일본 나가노(長野)현은 일본알프스라 불리는 거대한 산맥들에 둘러싸인 산악지형으로 유명하다. 남쪽의 남알프스, 중앙부에 위치한 중부알프스, 그리고 뒤편의 북알프스에 펼쳐진 3,000미터급 이상 고산 암벽 능선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 등반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나가노현의 깊은 산중에 지금으로부터 140여년 전 일본 근대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잠사산업(蠶絲産業)’의 중심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오카야(岡谷)’라는 곳이다. 당시 이곳에는 일본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세운 대규모 ‘견사공장(絹絲工場/製糸場)’과 약 200여 개의 크고 작은 공장들이 있었다. 모두 일본의 특산품인 생견사(生絹絲)를 유럽에 수출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견사의 최대 생산지이자 시장이었던 유럽은 누에 병인 ‘미립자병(微粒子病)’이 만연하여 양잠산업이 거의 괘멸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세계적인 견사 생산국이자 수출국의 하나였던 중국 청나라 역시 아편전쟁의 여파로 혼란을 겪게 되면서 유럽은 새로운 공급처로 일본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시 부국강병 근대화 국가를 꿈꾸던 일본 메이지 정부는 궁핍한 재정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견사 생산기술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비록 서양의 최신식 기계설비를 갖추었다고는 하나, 누에고치로부터 생견사를 추출하는 공정에는 반드시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섭씨 80°C의 뜨거운 물에 담긴 누에고치에서 실 가닥을 뽑아내어 견사로 전환하는 공정이 그것이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이곳 공장으로 몰려들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나이 어린 여공(女工)들이었다.
당시 여공들의 평균연령은 12세~15세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이제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나가노현과 인근 현(縣), 그리고 멀리 홋카이도와 오키나와에서 오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최신 기술을 배워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 세워진 견사공장에서 지도자로 일할 인재를 양성할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대다수 어린 소녀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위한 이동 경로를 들여다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들은 부모 곁을 떠나 각 공장에서 파견된 모집원들을 따라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씩 무리를 지어 해발고도 1,600미터가 넘는 일본알프스 능선의 크고 작은 산마루를 넘고 또 넘어야 했다. 그것도 무려 100km가 넘는 험난한 산길을 7, 8일 이상 걸어야 했다고 한다.
당시 견사공장은 가동 시기가 정해져 있었다. 매해 2월 말경에 시작하여 12월에 마감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이들 어린 소녀들은 2월 중순이 되면 고향을 떠나야 했는데, 이때 고산지대 산길은 여전히 심한 폭설과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매년 동사자가 발생하고, 험난한 눈길 절벽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다반사였다. 겨우 목숨 부지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젠 가혹한 노동환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이들 소녀들은 자신이 번 돈으로 빈곤한 집안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자신만이라도 공장에서 제공하는 삼시 세끼 따뜻한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집에 있어봤자 어차피 힘든 시골 생활은 피할 수 없었으므로 친구 따라 길을 나서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개항 직후였던 일본은 서구 열강들과의 무역거래에서 만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지만 견사 수출로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여공이 생산한 견사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나이 어린 소녀들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각이 크다.
이러한 견사공장에도 기술혁신의 바람은 불어왔다. 1965년 닛산이 새로이 개발한 견사생산기계를 선보인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최신형인 당시 기계설비는 현재는 가동하지 않고 전시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도요타와 스즈키도 처음에는 자동방직기계로 창업하게 되었다고 하니 일본의 자동차산업과 방직산업 간의 관계가 흥미롭다. 이후 자동화 설비의 꾸준한 도입과 함께 나고야 등 대도시 공업지역으로 공장들이 이전되어 감에 따라 여공들도 사라지고, 이곳 공장들도 1980년대 후반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신기술의 등장은 전통적인 산업구조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고 있는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참고문헌>
山本茂実(1968年)。『あゝ野麦峠』 副題「ある製糸工女哀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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