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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물 Jan 29. 2023

지혜로운 회사원 #1. 용기를 낼 것

나 자신을 믿어야 용기가 생긴다. 

 인류는 여러가지 수만년을 살면서 여러가지 시행착오 끝에 현재의 "민주주의"사회를 발명해 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미되어 영화 속의 화려한 아이언 맨이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것 처럼 멋지게 인류를 유혹한다. 이 자본주의는 "자유"를 기반으로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를 그의 지배논리로 삼고 영생이라도 누리는 듯 이 전의 모든 구식의 지배 논리를 비웃는다.   

 

 과연 자유는 인류, 아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만이라도 그 의미 그대로, 모두가 누리며 살고 있는가?? 여기에 "그렇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순수한 뇌를 가진 유아기적 인간 아니면 태극기 부대와 같은 어떠한 사실과 근거에도 무너지지 않는 꼴통이 아닌 이상 없을 것이다. 자유는 돈이 많을 수록,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록 에너지와 시간이 유한한 인간에게 너그럽다.  반대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할 수록, 더러운 환경에 더 자주 노출된 인간일 수록 더 많은 에너지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인생을 혹독하게 살아가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나는 적어도 인류가 계발한 지배논리 중 하나인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자유의 의미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결국 많은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지배논리에서 시작을 했으니, 완벽할 수 없다는 의미다. 


자, 현미경을 더욱 조여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회사원의 세포 속을 들여다 보자. 자본주의의 화려한 논리 속에 잔인한 자유성을 부여받는 민주주의 사회 속의 작은 세포와 같은 회사 안에 바로 당신이 있다. 당신이 대기업과 같은 중요 장기의 세포이거나, 혹은 곧 죽어서 없어져도 전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중소기업에 속해 있는 세포더라도 나는 하나를 관통해 내는 공통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


과거의 인류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본능을 기반으로한 지역 공동체의 "지혜"를 근본으로 삼고 인생을 살아내었기에, 정신병이나 자아실현의 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회사원으로서의 당신은 더이상 유교를 바탕으로한 집안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으로부터 당신의 운명을 혹은 당신의 선택을 맡기지 않는다. 이제는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현실의 "순응주의"를 교묘하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무의식적으로 쇠뇌시킨다. 


"당신은 강남 아파트에 살고 싶습니다. 갭투기를 할 수 있다면 더 더욱 좋지요. 아파트는 주거 목적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생각하고 당신은 무슨일 이 있더라도 당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를 방해하여, 그들의 돈을 편취해야 합니다. " " 당신은 자녀를 인서울 4년제 대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8학군으로 이사하여 고가의 학원을 밤 열한시가 넘도록 되도록 아이들을 혹사 시켜야합니다." 


특히 이 주문은 "회사원"에게 더 자주, 세뇌된다. 왜냐하면 회사원은 상대적으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용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제시하는 행복의 기준을 아무런 고민없이 받아들이고, 몇 년이고 몇 십년이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내 인생의 기준을 조용하고 신중하게 세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교묘한 술수와 화려한 외모, 교태로 유혹하는 양귀비처럼 민주주의의 폐단인 "순응주의"가 제시하는 달콤하지만 허황된 미래에 현혹되면 안된다. 양귀비에게 빠지는 순간 당나라가 몰락했듯이, 우리는 지배계급의 순응주의에 빠져 나의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몇 십년간 빼앗길 수도 있다. 


용기를 내자. 

나 자신을 믿고 이제는 시간을 갖고 곰곰히 조용하게 생각이란걸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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