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삼인산 정상에 다녀왔다.
몇년간 집안에서만 뒹굴던 나의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여러차례 언제 한번 가자는 남편의 말에도 대강 대답만 하고 미뤘던 일이다.
새해를 맞아 정상을 한번 보여 주고 싶다는 남편의 간곡한 청을 못이기는척 들어주고, 가다가 못가면 바로 내려올거라고 어깃장까지 놓고 출발을 하였다.
정상으로 가는 가장 쉬운길이라는 말에도 나는 입구부터 숨이 차왔다. 굳이 내가 이곳에 왜 올라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이 물음이 자꾸 생겼지만, 너무 기대에 차있는 큰 아이를 보자니 차마 돌아갈 수 없어 숨을 헐떡이면서도 꾸역꾸역 올라갔다.
지금의 내나이쯤 부터 아빠는 등산을 자주가셨다.
동호회도 있고, 엄마와도 함께 갔지만, 주로 혼자 다녀오셨다. 그렇게 아빠의 산 사랑은 백두대간을 몇번 종주하고서야 차츰 시들해졌다.
그 다음 아빠의 운동은 걷기였다.
출퇴근 시간, 한 시간정도를 걷는 정도에서 때로는 아주 먼 길을 아주 오랬동안 걷기도 했으며, 따로 수업도 듣고 공부도 하셨다.
그때쯤 아빠는 원주에서 장장 하루를 걸어 서울까지와 내 얼굴만 잠깐 보고 가신적도 있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대단하다.
한번은 아빠에게 그렇게 오랬동안 걸으면서 무슨생각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아빠는 "아무생각 안하려고 걷는다"고 했다.
운동을 하며 더는 물러날 수 없는 극한의 상태가 되었을때, 그때 비로소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세컨드윈드' 상태가 된다. 라는 글을 읽은적 있다.
아마도 아빠는 존재가 감당해야하는 그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온전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을 찾아다니지 않았을까.
정상에 올라 아이들과 사진 찍고, 준비해간 간식을 먹고, 남편과 믹스커피를 나눠마시며 "아,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기 기저귀도 갈아 주며 삼인산 정상에서 기저귀 가는 사람은 니가 처음일꺼라며 다함께 웃었다.
올라갈때의 힘듦은 어느새 잊혀지고 그 순간의 작은 기쁨에 그저 벅찼다.
내가 내 삶조차도 어떻게 할 수 있는것이 하나도 없다는 무력감과 무의미함들 속에서,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긍정의 방향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아이들과 따뜻한 밥을 지어 나누어 먹는것, 남편과 한번 더 눈 마주치며 웃어보는것, 주변을 그리고 나 자신을 조금더 부지런히 단정하게 하는것.
주어진 나의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사랑하는 것으로 나의 최선의 순간, 그 "새로운 바람"의 순간이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