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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근 Jun 08. 2024

검은 바다_4

 ‘광장에서 웬 짐승 같은 아이를 발견했다는데, 너도 봤니?’

 심부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아버지가 물었단다. 그렇지 않아도 낮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지. 일어나기 쉬운 일은 아니잖니.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셨어. 하기야, 마을의 규모가 커졌어도, 여전히 작은 항구마을이었으니, 소문이 빨리 돌았을 거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나쁜 일을 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단다.

 ‘그냥… 구경 갔다가…’

 짧은 대답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수프 한 스푼을 떠드시곤 이어서 말씀하셨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속에서 버려졌다가 구조된 것 같더구나. 아직 마을 생활이 서툴 수도 있으니, 네가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건 어떻겠니?’

 아버지의 말에 난 들고 있던 스푼도 내려놓고 대답했어.

 ‘네? 제가 왜요? 다른 얘들도 많잖아요.‘

 아버지는 반발하던 나를 똑바로 바라보시며 대답하셨어.

 ‘어려운 이가 있다면 돕는 게 당연한 거지 않니? 할아버지도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란다. 그래서,’

 ‘우리 마을과 할머니도 도우셨던 거고.’

 아버지의 말을 가로채고 난 대답했지. 늘 입에 달고 사시던 말이었어. 아버지는 도덕적인 분이셨단다. 베니. 당신의 아버지와 똑 닮으신 분이셨지. 아직 우리 마을에 외부인들이 많이 없었을 때, 사실 모든 외부인들이 토착민들에게 친절했던 건 아니었단다. 무시하고 야만스럽다고 욕하던 사람도 있었지. 하지만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다르셨어. 의사이셨던 그분은 마을의 사람들에게 먼저 선심을 베푸시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어. 마을에 새로 들어온 외부인들 때문에 잠시 돌았던 역병 때에도 할아버지만 떠나지 않고 사람들을 지키셨지. 그 일 덕분에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존경을 받게 되었고 토착민들도 외부인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었어.

 역병이 지나간 후 사람들은 할아버지에게 마을에서 제일 미인이었던 할머니를 선물했어. 많은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보답이었지. 할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두 분은 결혼한 후 아버지를 낳았어. 그리고 할아버지의 정신은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단다. 남을 돕고, 솔선수범하시는 그 정신 말이야.

 마을에서 존경받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너무 좋았지만,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라니… 너무 싫었단다. 지저분하고 거친 행동은 둘째 치더라도, 그 소름 끼치는 미소. 그 미소가 마음에 계속 걸렸어. 그 아이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단다. 마치 덫에 걸린 먹이를 보는 그런 눈빛과 미소. 다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꺼림칙해져 아버지에게 대들어 봤어.

 ‘다른 아저씨들도… 가까이하기 싫어했어요. 그 얘, 웃는 것도 이상하고, 말도 못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 친구가 더 필요하겠구나.’

 ‘그렇지만,’

 ‘폴씨가 결국 그 아이를 거둬갔다지?’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계셨어. 그런 데도 나에게 물어보셨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길 원하셨던 것 같아. 운명인지 우연인지, 그게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진 아버지도 그때까지 모르셨겠지…

 ‘안 그래도 내일 폴 아저씨에게 전달해 줄게 있었는데, 잘 됐구나. 심부름 다녀올 거지?’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어. 그런 반응에 내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단다.

 ‘폴씨는 현명한 사람이야. 그가 거둬드렸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다. 그러니 그 아이에 대해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그래도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아버지는 이어서 말씀하셨어.

‘너는 이 마을을 사랑하니?’

 ‘네?’

 ‘이 마을을 좋아하는지 물었단다.’

 나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어.

 ‘네, 좋아해요.’

 아버지는 빙긋 웃으시며 나에게 말씀하셨지.

 ‘나도 그렇단다.‘

 그리고 말씀을 이어가셨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마을은 예전보다 많이 성장하고 점점 더 커져가고 있지? 아주 좋은 일이야. 사람들이 더욱 편하고 활기차게 살게 되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오해는 커지고 소통은 적어질 수 있다는 걸 의미 한 단다. 그런 것들은 불화와 미움을 낳기 마련이지. 자, 생각해 보렴. 특이한 아이가 나타났고 사람들이 그 아이를 배척한다면, 오늘 네가 갔었던 평화롭고 따뜻하던 광장의 분위기는 예전 같긴 힘들꺼란다, 아들아.‘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내일 폴씨 댁에 다녀와 주겠니?’

 아버지의 부탁에 난 고개를 들고 끄덕였어. 나의 대답에 아버지는 다시 식사를 시작하셨고 나도 다시 스푼을 손에 들었지. 하지만 그 꺼림칙한 미소는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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