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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근 Mar 30. 2024

휴식_1

동현씨의 휴일

 아침 6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동현 씨는 습관처럼 핸드폰을 집어 들어 알림을 끄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에 발을 뻗는다. 얼굴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얼이 빠진 표정이다. 자느라 삐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크게 하품한다.

 ‘오늘 월요일… 출근….‘  

 일하러 가기 싫다고 생각하던 중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 오늘 대체 공휴일.‘ 깜박하고 꺼두지 않은 알람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일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침대에 눕는다. 하루를 더 쉬게 되었지만 동현 씨의 몸은 무겁고 눈은 침침하다. 토요일부터 쭉 쉬었어도 주말 동안 오히려 피로가 더 쌓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금요일 오전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오랜만의 긴 주말이었음에도 동현 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내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아보아도 이미 잠은 달아났는지 정신만 또렷해진다. 이불속에서 손을 뻗어 핸드폰 화면을 본다. 밤새 해외에 사는 재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미리 보기로 내용을 확인한다.

 [좀 쉬어.]

 동현 씨는 멍하니 문자를 바라본다.

 “이미 쉬고 있는데….”

 반쯤 잠긴 목소리로 동현 씨는 중얼거린다. 어젯밤 이야기를 나눴기에 재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동현의 마음은 어제의 대화보다 주식 차트로 쪽으로 향한다. 현황을 확인하려 주식 어플을 킨다. 익숙한 그래프가 화면에 뜨고 동현 씨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차트에 집중한다. 빨갛고 파란 선들이 번갈아 뜨며 잠시 아래로 향한다. 동현 씨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진다. 안 그래도 이번 달엔 수익이 넉넉지 않을 텐데 어제보다 다소 떨어진 주가에 마음이 편치 않다. 주식 소식을 온라인에서 그렇게 찾아보고 경제 현황을 주기적으로 들어도 항상 개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해진다. 하아- 동현 씨는 다시 한숨을 내쉰다. 아침부터 걱정들이 밀려온다.

 ‘이번 거에 꽤나 크게 매입한 건데.’

 ‘혹시나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냥 지금 뺄까?‘

 ‘아냐, 내버려 두자. 혹시 크게 터질지 모르잖아.‘

 ‘이게 날아가면 다음 달 카드값은 좀 힘들 수도 있는데…’

 동현 씨의 머릿속은 복잡해지지만 여전히 눈은 차트에 고정되어 있다. 한참이나 그래프를 보고 있으니 슬슬 눈이 시렸다. 동현 씨는 눈을 비비고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은 벌써 9:30분이 되었다. 점심 약속이 기억난다. 한시 반에 만나기로 했으니 준비 시간까지 고려하면 지금 운동을 가야 한다. 동현 씨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백열등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어두운 느낌의 불을 킨다. 그 밝은 것 같으면서 어두운 조명 아래 칙칙한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어제저녁 친구들과 술을 거하게 먹은 탓에 얼굴이 퉁퉁 부었다. 손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자신의 몸을 본다. 살짝 나온 배가 보인다. 그나마 울며 겨자 먹기로 주 일 이 회 운동을 가기에 덜 나온 배다.

 ‘지금 운동을 가야 되는데… 그래야 그나마 좀 괜찮아 보일 텐데…’

 동현 씨는 자신의 몸을 보며 점심에 있을 소개팅을 생각한다. 메신저에서 본 여자의 프로필 사진을 생각해 보니 어제 마지막 맥주는 먹지 말 걸 후회했다. 어제 아침보다 더 나온 배를 보며 운동 가야겠단 생각을 들었지만 세면대 앞에 서 있던 동현 씨는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온다. 요즘 들어 부쩍 한숨이 늘었다. 사실 동현 씨는 운동도 오늘 약속도 가기 싫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동현 씨를 부추긴다. 무기력해진다. 금요일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다.


*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일하면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나?”

 박 부장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동현 씨에게 소리 질렀다. 동현 씨는 박 부장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분명히 컨퍼런스 예약 시간 전달 하지 않았어? 근데 왜 예약 시간을 니 맘대로 늘리냐고?”

 동현 씨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사의 컨퍼런스 룸을 예약하기 전날 밤, 동현 씨는 주가가 떨어져 친구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 덕에 다음 날까지 숙취가 심하게 남아 반차를 쓰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예약 이메일은 박 부장의 지시로 오전 중에 보낸게 화가 되었다. 숙취로 시간이 헷갈린 동현 씨는 결국 회사가 70 만원을 더 내고 회의장을 6시간 더 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임을 안 동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계속 고개만 숙이고 박 부장이 소리 지를 때마다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입사 초반에는 빠릿빠릿하고 열심히 배우더니, 이제 주임 달았다고 총무과 들어온 게 후회라도 되나?”

 박 부장의 말에 동현 씨는 마음이 찔렸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질 때 운 좋게 들어오게 된 이 중소기업. 처음엔 취직이 된 것 자체에 뛸 듯 기쁜 동현 씨였다. 그렇기에 대개 허드레 일만 하는 것 같은 총무과였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팬데믹이 끝나고 삶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동현 씨는 마음에선 다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코로나 이후 물가가 계속 오름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더 높은 연봉을 목표로 하기에는 '잡부'인 총무과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서른 초반의 동현 씨는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핸드폰 화면에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자신만 도태되어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뒤쳐졌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휘모몰아쳐 오기 시작했다. 결혼은 하게 될지, 직장은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집은 마련할 수 있을지.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동현 씨를 점점 조여왔다.  

 동현 씨는 일단 주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본디 문과 체질이기에 숫자는 질색하지만 노후를 생각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헬스 장도 등록했다. 비록 안 갈 때가 많았어도 자신을 매력적인 남성으로 가꾸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투자했다. 쉬는 날엔 스터디 모임이나 사람들을 만나며 친목을 쌓았다. 그중 몇몇은 사적인 만남으로 이어져 짧게나마 연애도 했었다. 동현 씨는 더욱더 바빠졌다. 하는 일도 많았고 만나는 사람도 많았다. 알게 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아는 것도 많아졌다. 이렇게 살면 삶이 활기차질 것 같았는데 동현 씨는 시간이 지날 수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맞는 건가?'

 동현 씨는 점점 쉽게 지쳐갔다. 처음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싶어 주말 동안 푹 쉬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쉬고 돌아온 다음에도 여전히 힘이 나지 않았다. 예전 만큼 집중하기도 힘들었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시작하면 금방 피로가 몰려와 하루의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런 날들이 많아질수록 동현 씨의 불안도도 점점 올라갔다. 높아진 불안은 동현 씨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했고 이는 주식 성과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현 씨는 마침내 주식으로 큰돈을 잃었고 긴 주말을 앞둔 금요일 아침, 동현 씨는 박 부장 앞에 서 있게 되었다.


 “뭐야, 이 자식 진짜 후회하나 보네.”

 동현 씨가 아무 말이 없자 박 부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다시는 이런 실수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동현 씨는 다급하게 머리를 더 숙이며 말하자 박 부장은 얼마 안 남은 윗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한숨만 내셨다.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어. 회사 비용이 김 주임 실수로 발생했으니까 김 주임이 책임져야 해. “

 박 부장의 말에 동현 씨는 마른침을 삼켰다. 머릿속에서 손해 본 주식 금액이 스쳐 지나갔다.

 “손실은 김 주임 다음 월급에서 감봉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

 박 부장의 말에 동현 씨가 ‘네?‘ 하고 되묻자 박 부장은 잘리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며 동현 씨를 나무랐다. 동현 씨는 박 부장의 말에 뭐라고 대꾸라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과오이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 부장에게 알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동현 씨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날 동현 씨는 하루종일 걱정, 수치심과 함께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화장실 바닥의 찬 기운이 엉덩이까지 물 드렸다. 얼른 일어나서 운동 갈 준비를 해야겠단 생각을 하지만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더니 동현 씨는 어제 먹은 술을 다 토해냈다. 몇 번을 게워내자 속이 조금 편해진 동현 씨는 다시 화장실 바닥에 앉는다.

 '안 되겠다. 오늘 운동은 패스.'

 일어나 입을 헹구고 다시 침대로 가 이젠 유튜브를 재생한다. 자주 보던 동기부여 유튜버가 새로운 영상을 업로드했다.

 [당신이 운동을 매일 해야 하는 이유]

 대략 8분짜리 영상. 영상이 끝나자 동현 씨는 다시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헬스 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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