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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Jun 13. 2023

내가 기사를 쓸 때 내 사람들은 고통받았다

고발기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친구로 산다는 것

제보를 받았다.

지역 경찰서 모 간부의 직장 내 갑질과 성희롱 문제가 불거졌다는 거다. 사건의 배경은 저녁 술자리, 등장인물은 간부와 그의 지인, 그리고 여성 부하직원.

중년 남성 둘이 세상 욕이나 하며 술잔이나 기울일 것이지, 그 자리에 젊은 여직원을 호출한 것부터가 비상식적이다. 지인이라는 양반이 시시껄렁한 농담이랍시고 지껄인 말들은 더 가관이다.

"승진하려면 잘 보여야지."

늦은 시간 사적인 술자리에 불려 나간 것도 불쾌한데, 뭘 잘 보이란 말인가.


이 일은 속앓이를 하던 여직원이 선배직원에게 고충을 토로하면서 수면으로 떠올랐다.

감사 대상이 된 간부의 변명이라곤 고작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였다.

그는 자신의 항변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인의 망발에 화를 내지도 않았다. 저 혼자 즐거운 술자리에서 실실 웃었을 뿐.





취재는 오전부터 시작됐다. 경찰서 사무실에 해당 간부가 출근을 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사무실은 비어있었다. 휴가를 갔다고 했다. 같은 부서의 부하직원들도 모르는 갑작스런 휴가다.

쉬쉬하는 분위기에도 이야기들은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적잖은 시간 동안 주워들은 것들을 모아 마지막에 청문감사관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기자님, 이 시간에 경찰서에서 뭐 하십니까."

전화기 너머로 경찰청 홍보직원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엉거주춤함이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그가 말한 '이 시간'은 점심식사를 막 마친 오후였다. 전날 당직과 당일 교대 직원을 만나는 오전 중에 경찰서에서의 업무를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그 시간까지 경찰서에 있는 건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몇년을 밤낮으로 뻔질나게 다니던 경찰서였다. 그러니 오후라는 게 이런 전화까지 받을 정도로 이상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시던 취재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전화통화는 늘 그렇듯 진부한 멘트로 끊어졌다.


그런데 끝맛이 찝찝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이 시간에 경찰서에 있다는 것을. 그가 앉아있는 사무실은 내가 있는 이 경찰서에서 족히 수㎞는 떨어져 있었다.

계단 옆 복도의 낡은 테이블에 앉아 찝찝함을 곱씹고 있는데, 젊은 직원이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왔다. 경찰서 홍보담당 직원이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인사를 하고 황급히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그의 사무실은 2층, 내가 앉은 곳은 3층. 그의 뒷모습은 당황함이 역력했다.





나와 눈을 마주친 그가 왜 그렇게 당혹스러워했는지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경찰서에서 나와 만난 직원들이 감사관실로 불려 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나를 만났는지, 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일상적인 안부인사를 주고받은 게 전부인 이들이었다.

홍보담당 젊은 직원의 미션은 내 뒤를 밟으면서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로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이 불필요한 감찰과 의심을 받게 된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았다고 한들 겨우 신입 딱지를 뗀 그가 상부 지시를 거절할 도리도 없었을 것이다.


곧바로 감사관실과 홍보실에 항의했다.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식입장을 내놓고선, 뒤로는 내부고발자를 색출하겠다는 심보였다.

'조직의 배신자'를 찾고 싶었던 이중성을 두 손 놓고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그 부당한 감찰을 멈출 때까지 이번 사안을 기사로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연일 계속되는 기사가 귀찮았는지, 유의미한 성과가 없다는 걸 불현듯 깨달은 것인지 감찰은 조용히 중단됐다.






경찰 간부는 결국 이 일로 옷을 벗었다. 시간은 흐르고, 사건도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공직을 떠난 그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애처가였다는 그가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개인사까지 귀를 기울이기에는 나의 일상도 버거웠다. 매일, 매시간 이슈를 쫓아다니느라 하루하루 안간힘을 다해 살아내는 중이었다.


그날도 살아내기 위해 움직이던 휴일 오전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처럼 쉬는 날 부디 업무전화가 아니길 바라면서 한숨부터 내쉬고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상한 전화인가 하는 찰나, 한없이 가라앉고 갈라진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 ○○○ 기자님?"

그였다. 자신의 처지를 한참 비관하던 그가 내게 물었다.

"이제 속이 시원하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사적으로 되물어야 하는데, 목구멍에서 소리가 웅얼거렸다. 뇌에서 혀끝으로 이어지는 회로가 멈춘 것 같았다.

"제가 죽으면 다 끝나겠죠? 그래야 해결되겠죠?"

격앙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심장이 널뛰어 손가락 끝까지 박동수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그렇다고 다시 전화를 걸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평소 그와 친분이 있는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모르니 잘 살펴봐달란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이후로 비보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전화통화마저 술자리 안주거리가 될 때 즈음이었다.

소주 한잔을 털어 넣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나 그때 감사관실 갔다 왔는데."

옆에 있던 다른 친구는 "나도 갔잖아"라며 더 크게 웃어 보였다.

경찰과 기자로 만난 친구였다. 일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하던 사이였다.

그날은 만난 적도 없던 이들이었다.


그저 친구라는 이유로 감사관실에 불려 가 취조 같은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번도 아니고 몇번씩이나 참아왔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걸 왜 여태 말 안 했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것은 내 앞의 두 사람에게 던진 질문이란 형태를 갖춘 원망이었다.

가까운 이들이 고통받는 동안 나는 뭘 한 걸까. 왜 나는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걸까. 내가 알았다면, 그때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어딘가로 내뱉지 못하고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원망이었다.

무력했고, 무력하고, 또 앞으로도 무력할 수밖에 없을 내 스스로가 비참했다.

너덜거리는 손으로 소주잔을 털어 넣었다. 소주가 짜다고 생각했다. 눈물도 함께 목구멍으로 넘긴 탓에 술맛이 짜다 여겼는데, 미처 삼키지 못한 눈물이 마저 터져 나왔다.

나와 가까운 이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뭘 하겠다고.

그렇게 나는 한참을 울었고, 내 앞의 두 사람은 그저 웃었다.





신문사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 들어온 단독기사였다. 그래서 포트폴리오에 대표적으로 꼽는 기사기도 했다. 덕분에 새 직장에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저연차의 나는 싸움닭 같았다. '원칙적으로', '결과적으로'라는 말들로 포장해 늘 까칠했고, 으르렁거렸다.

한때는 기자가 가진 직업병 같은 거라 착각하기도 했다. '호전적'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나쁘다 여기지도 않았다.

어느 출입처에서 실수로 공개된 기자명단 중 내 이름 옆에 '우호적'이라고 적힌 메모가 기자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로 회자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치가 쌓일수록 나는 자꾸만 줄어들었다.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이 다칠까봐 늘 불안했다. 내 글로 누군가가 힘들어지는 게 괴로웠다.

그럼에도 내 직업에 주어진 일을 해야 했고, 그땐 가까운 이들을 멀리하는 것만이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어떤 날은 스스로 성장했다 자평하며 대견스러워하다가도, 어느새 허무함에 괴로워했다.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을 기자, 특히 남의 잘못을 끄집어내는 고발기자로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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