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어'는 패배의 변명일까

최선과 최고에 대한 통찰

by 주비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싶은가, '최고'가 되고 싶은가.


"난 최선을 다했어"는 흔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자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뉘앙스로 사용되곤 한다. 이를 테면 "난 너에게 최선을 다했어" 라며 끝내 헤어지는 연인, 최선을 다했지만 떨어졌어" 라며 씁쓸히 말하는 수험생. '최선'은 그 본래 의미와 다르게 어째서인지 실패와 더 잘 어울리게 된 듯하다. 이러다 보니, '최선을 다했어'는 패배의 변명처럼 들릴 때도 있고, "최선? 결국 최고는 아니었잖아"라며 타인에게 쉽게 평가절하 당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최선보다 최고를 외치는 사회가 됐을까?


답은 간단하다. 성과, 결과, 경쟁,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무엇을 했느냐'보다 '얼마나 잘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고'는 시험 1등, 매출 1위, 승률 100% 라는 수치로 아주 명확하고 적나라하다. 반면 '최선'은 개인의 마음과 과정에 기반한다. 최선은 수치로 나타내기 애매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최선'의 가치를 폄하한다.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시험 점수가, 팀워크보다 매출이, 깊은 인간관계보다 SNS팔로워 수가 더 중요해져 버린 사회.

게다가 이 불공평한 세상은 타고난 능력, 환경, 조건 때문에 노력 없이도 ‘최고’라는 자리에 쉽게 오르기도 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도 사회가 말하는 ‘최고’ 근처조차 못 갈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최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아주 엄격한 독재자 같다. 사회가 요구하는 '최고'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피로하게 군림하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문득 묻게 된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최고를 향해 달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후자가 더 멋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더 많은 인정, 더 빠른 성취, 더 높은 연봉, 더 확실한 위치. 하지만 돌아보면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은 '최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했을 때, 결과는 실패였지만 과정이 부끄럽지 않았을 때, 아무도 보지 않아도 묵묵히 했던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정말 최고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옳은가? ‘측정 가능한 것’만이 가치 있는가? 누군가의 진심, 느린 걸음, 조용한 성장, 실패 속의 성숙은 왜 평가받지 못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최고만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의 최선이 존중받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최선을 다했어"라는 말이 더 이상 실패의 변명이 아닌, 진심의 증거가 되기를 바라며.





진지하지만 어렵지 않게, 함께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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