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우리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고자 하는 관점은 의미가 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의미를 사회초년생의 사회생활 적응기, 자신의 꿈과 목표를 깨달아가는 여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의미에 대해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조직 혹은 집단 문화가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집어삼킬 때 생길 수 있는 일화"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볼까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의 의미를 해석해본다면 우리가 사회적 압력에 대응해 자아와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기 전에, 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 가지 가정적 질문을 해봤습니다.
만약 앤디(주인공)가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런웨이에 입사했다면, 과연 결과가 달랐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앤디가 이 영화를 보고 런웨이에 입사했다면 런웨이에 입사할 때부터 자신의 길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을테니, 미란다가 준 말도 안되는 일들을 거부하고 더 일찍 퇴사를 하고 기자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이 글을 작성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몇 가지 요인을 간과한다면, 의외로 앤디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영화에서 저의 인물 탐구의 주제는 '무엇이 앤디를 그토록 바꾸었나?' 입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해 불완전한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영화의 주인공의 의사결정 과정과 그 속에 숨겨진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조직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목표를 잃지 않기 위해 반드시 인지해야 하는 세 가지 힘에 대해서 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힘, 군중의 생각에 무력합니다. 군중심리의 힘을 보여주는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는데, 아마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누가 보아도 분명하게 길이가 차이나는 세 막대가 있고, 한 명의 실험자와 실험자를 속이기 위한 나머지 군중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 막대 중 어떤 막대가 가장 기냐는 질문에 답을 하는데, 실험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의도적으로 오답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실험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결과는 많은 실험자들은 군중의 판단을 따랐고, 오답을 선택합니다.
이처럼 사회적 힘, 집단의 믿음은 눈 앞에 버젓이 있는 정답을 두고도 이를 왜곡시킬 힘이 있습니다. 실험은 일시적이었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집단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군중 심리가 더욱 강화되고, 개인의 이성은 집단적 비이성에 잠식당하고 맙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이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때문에 '나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걸'이라 생각하는 것은 이런 사회적 힘을 간과하는 자기애적 오류에 가깝습니다.
한편,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삶을 살아가기 위해 조직 혹은 집단에 속하기 마련입니다. 가족, 학교, 직장 등 끊임 없이 속하고 있으며, 속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 체계는 늘 집단이 추구하는 특수한 문화 혹은 가치 체계 하에 있으며, 앞서 말한 개인의 이성적 판단에 왜곡을 만드는 집단적 힘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일종의 중력 장에 의한 왜곡을 시시 때때로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직의 사회적 압력이 개인의 사고를 왜곡하여,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탐구할 수 있는 사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주인공)와 런웨이(주인공이 근무한 회사)입니다. 런웨이라는 조직에 속함으로써 접하게 되는 집단적 문화, 사회적 힘이 개인의 가치체계를 왜곡하여 집어삼킨 상황, 불완전한 자아상을 갖고 있는 우리가 길을 잃을 수 있는 바로 그 상황입니다.
안드레아의 과정을 다시 살펴보죠. 안드레아는 처음부터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대략 있었으나, 일단 취업을 해야할 것 같아 약간의 행운이 결합되며 Runway 매거진에 입사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패션에 관심도 없었으며, 매거진은 더더욱 관심이 없었죠. 그녀는 친구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처음 입사한 런웨이 잡지의 직원들이 이상하다고 말했으며, 친구들과 건배를 하며 외친 것처럼 그녀는 '월세'를 위해 런웨이에서 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랬던 그녀는 런웨이에 누구보다 충성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느샌가 그녀는 런웨이에서 일하는 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나르시스틱한 에디터를 욕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에디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옷부터 말투, 행동까지 그곳의 문화와 가치체계를 내면화 하였고, 이런 그녀에게 친구들과 남자친구들는 이질감을 느끼죠. 원래 꿈꿔왔던 기자의 정체성은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저는 조직에 늘 속해야 하는 평범한 개인의 정체성과 생각의 개성을 잃지 않기 위해 이 힘을 정리해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특히 저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은 사유의 깊이가 깊지 않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실패를 반복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죠. 특히 가장 경계하고 싶은 상황은 특수한 바로 그 조직 문화에 젖어들어 스스로 괜찮은 곳에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상황입니다. 마치 앤디가 자신이 선택한지 안한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은 선택된 상태고, 그저 앞으로 가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요.
그럼 이제 본론에서 앤디를 길을 잃게 만든 세 가지 힘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성실한 사회 초년생이라면 주어진 모든 일들이 기회라고 느낍니다. 특히 과거에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받은 이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비단 그런 사람만의 특성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조직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이고 싶은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동물로써 지극히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진화적 생존 본능이자, 개인을 사회적으로 성장시키는 주요한 동기입니다.
하지만 그 성장의 욕구가 잘못된 방향성 위에 있다면 어떨까요? 영화 주인공인 앤디는 스탠포드 법대에 합격을 받은 수재였고, 미국 명문대중 하나인 노스웨스턴대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런웨이에서 하는 비서 일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바쁜 허드렛일에 가까웠고, 그녀의 재능을 썩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비서 일을 하며 그곳을 그만두게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수많은 챌린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언급하게 될 나르시스트적인 보스 미란다에 의한 것이죠. 하지만 그녀는 운과 특유의 성실함이 결합되어 모든 챌린지를 극복하고 보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저는 여기에서 그녀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곳에서 주어지는 챌린지와 인정이
장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까?
다시 말해, 나의 인정 욕구가 올바른 방향성 위에 있는지 다시 돌아보고 자문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조직에서 주어지는 목표, 과업을 달성하느라 이러한 질문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일단 바쁘기 때문이죠. 앤디가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앤디와 같은 인정 욕구, 직업적으로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중요시 하는 성장형 캐릭터들은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치 앤디가 원했던 커리어에 전혀 기여할 수 없는 직업에 온 전념을 다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행위의 본질적 물음보다 본능적 동기가 앞세워진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이것이 조직이 개인의 사고를 잠식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첫 번째 힘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이 행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조직과 자신의 일을 일치시킴으로써 그곳의 경험을 자산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하며, 알아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앤디와 같은 조직이 만들어놓은 신호-보상 체계 위에서 인정 욕구만을 쫓는 선택을 하는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정욕구,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는 단기적 생존 본능이 더욱 앞세워진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지나고 나서 보면 열심히는 했는데 무엇을 위해서 달렸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어쩌면 일의 의미나 본질적 가치에 대한 판단보다 경쟁심과 인정욕구가 앞세워 져있을 수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쁘더라도, 행위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간간히 생각을 정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어떤 조직이나 집단이든 관계없이, 조직이 추구하는 공통된 믿음 혹은 조직의 우월함의 표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집단적 가치 체계이고 문화입니다. 이것의 긍정적인 순영향은 조직에 속한 개인의 소속감을 강화시키고, 안정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 조직을 선택한 내가 더 낫다고 믿게 만들 조직적 근거가 있는 셈이죠.
한편 이것이 이성적인 수준을 넘어간다면, 근거 없는 집단최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런웨이는 이런 집단적 최면이 강하게 자리잡은 문화가 돋보이는 조직입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한참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는 앤디에게 이런 대사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이 직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직장이야',
'너 말고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
'미란다와 일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깔리고 널렸다'
저는 이런 대사들이 조직의 우월함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도적 설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미란다 같은 리더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장은 모든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출세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 행동합니다. 그랬기에 그런 행동의 근거나 진위를 알 리 만무한 앤디는 혼란스럽기만 하죠. 왜냐하면 외부자 관점에선 아무리봐도 미란다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비위를 맞춰주는 이 조직 분위기가 납득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글의 초반부에서 언급했듯이, 군중심리의 힘은 매섭습니다. 집단적 믿음 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볼온전한 개인의 이성은 쉽게 휘어지고, 그 자리는 편향이 꿰차기 마련입니다. 이런 조직적 우월함에 대한 믿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앤디는 어느덧 아버지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런웨이에서 일하는 것은 나에게 온 기회'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르고 맙니다. 한편 그녀에게 이러한 사상을 주입한 나이젤은 그저 조직적 편향에 적응한 한 개인일 뿐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감독은 의도적으로 집단적 최면에서 벗어나고 있는 앤디의 관점에서 런웨이의 이면을 서서히 비추어줍니다. 미란다는 오직 자신을 위해 일하는 나르시스트였으며, 런웨이는 자극적인 성형외과 관련 내용을 넣고 있고, 나이젤은 여성의 야생적 본능을 깨우는 야외 촬영에서 이러한 컨셉의 무모함에 대해서도 인지하는 모습을 말이죠. 가장 압권인 장면은 안드레아의 비서 선배가 혼자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우리는 한 번쯤 내가 속한 조직에서 중요시 하는 가치가 개인의 삶에 내재화 되어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 문화, 믿음이 곧 정답이라는 그 생각에 의심을 품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 중, 비이성적이라거나 개인의 정체성, 목표와 일치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우선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란다는 이 영화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왜냐하면 문화라고 하는 것, 조직이 추구하는 어떠한 믿음과 가치 체계는 결국 그 집단을 창조한 사람의 머리 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런웨이는 사실 상 그녀를 대변하는 회사이며, 런웨이 안의 모든 이들은 그녀가 창조해놓은 정답지를 봉사처럼 헤메다니는 인물들입니다.
나르시스트의 가장 무서운 특징 중 하나는 상대방의 가치 체계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자아에 과도하게 침전되어 있는 사람들이며, 스스로 정의한 자아의 우월성은 그 자체로 상대방의 가치 체계를 폄하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실 상 미란다가 만들어놓은 문화에 침전되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미란다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비서가 신입인 안드레아를 하대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런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녀 쫓을까요? 개개인마다 상황이 다를테니 일관될 수 없으나, 공통적으로 이러한 리더의 매력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대게 성공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의 이력은 그들의 말투나 행동에서 자신감을 만들어내며, 결과적으로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죠. 안드레아를 비롯한 직원들은 그녀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유혹을 당하고 만 것 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리더가 만들어내는 이 힘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조직에 속하든 조직의 리더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조직이나 집단이 추구하는 목표나 가치 체계(어떤 가치가 더 낫고, 그렇지 않다는 믿음)는 사실 리더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에 속한다는 것은 리더의 사고 체계에 동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합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고백하건데 이 글은 일부 저의 지난 삶을 다시 돌아보는 글이기도 합니다. 만약 조직이나 집단이 갖고 있는 특성과 그 힘을 인지한 상태라면, 피할 수 있었던 과거 여러 좋지않은 선택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지금 현재 속한 집단의 문화가 나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인간은 사회적 적응의 동물이기에 사고 체계에서 온전한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왜곡과 편향들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관점을 많이 쌓을수록,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결국 스스로가 더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기준에 근거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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