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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빕 Dec 07. 2024

종교인은 날 배신하지 않을 거야

리옹에서 찾은 뜻밖의 위안




고립감 속에서 다시 만난 세계


비자를 준비하면서 어학원에 열심히 다니면서도 아직 별로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심심한 찰나의 이야기이다. 매일 등하원 하는 길에 큰 가톨릭 관련 사무실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통해 유아세례를 받았다. 성당에 부속되어 있는 유치원도 다녔다. 초등학교 때까진 주일에 꼬박꼬박 미사에 참석했다. 엄마가 헌금하라고 준 1,000원을 받으면 성당 앞 슈퍼에서 군것질하고 500원만 내긴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종교와는 점점 멀어졌다. 이전까지 다닌 것도 스스로의 신앙심보다는 엄마가 시켜서 가는 것에 가까웠다.


따스한 맞이로 이어진 뜻밖의 전개


그렇게 잊혔던 나의 '전' 종교는 리옹의 그곳이 다시 발동을 걸어주었다. 나는 무작정 들어가서 혹시 '영성체 수업'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나는 세례까지만 받고 영성체는 수업을 받다가 그만둬서 아직 다 완성이 되지 않았다. 기관에서 안내하던 분은 나를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위층에 있는 다른 분을 연결해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얼결에 사무실까지 올라가서 담당자를 만났다. 그리고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분은 나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종교인은 날 저버리지 않을 거라는 내 믿음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분은 리옹에서 가까운 외곽 마을에 한국인 수녀님이 계시다고 했다. 굉장히 놀라웠다. 문의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내 정보를 받아가서 수녀님께 전달하겠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웃으며 나왔다.


프랑스어 버전 성경 공부의 험난한 여정


얼마 후 진짜로 수녀님께 메일이 왔다. 시간을 맞추는 어느 정도의 유예 기간이 있었고, 마음을 잡고 수녀님을 만나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 공부를 진행했다. 수녀님이 진도를 정해주고 읽어올 부분을 알려주시면, 일주일 동안 나는 열심히 그 텍스트를 읽고 나름의 이해를 거쳐서 수녀님을 만나러 와서 함께 공부하는 식이었다.


사실 쉽지 않았다. 성경은 원래도 읽기가 어려운데, 프랑스어로 공부라니. 성경에서는 문체도 일반적이지 않고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시제를 썼다. (사실 이 부분은 나중에 미술사 공부를 할 때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녀님을 만나러 수녀원에 가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리옹을 떠날 때까지 1년을 꾸준히 만나 뵈었다. 이 ‘꾸준히’ 하는 스케줄이 생겼다는 건 나의 리옹 생활에서 참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성경, 영성체, 그보다 더 큰 배움과 위로


원래 프랑스에서 영성체를 받으려면 2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리옹엔 정식 한국인 미사가 없지만, 자발적으로 리옹에서 미사를 진행하시는 신부님을 중심으로 한 달에 한번 한인미사가 진행되었다. 수녀님은 나를 그곳에 소개해주셨고 나는 수녀님과 만나서 공부한 지 1년 만에 그 미사에서 영성체를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게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하고 신기한 일이다.


사실, 그렇게 영성체를 받고 나서도 내 삶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크게 신앙심이라고 말할 것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1년 동안의 경험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실 프랑스에서의 생활 자체가 외로웠고, 어학원의 환경에서 사람들과 그다지 어울리지도 못하고 있었지 않은가. 그때 수녀님과의 만남은 내게 어떤 안정감을 주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단순히 종교적인 교훈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찾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프랑스어로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꽤나 어렵고 중간에 몇 번이나 포기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성취감과 수녀님과의 대화에서 얻은 위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리옹 한인 미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새로운 연결과 소통


리옹의 한인 미사에 두어 번쯤 참석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나처럼 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그 작은 한인 공동체는 내게 나름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결국 종교는 내게 어떤 강한 믿음이나 의무감보다는, 내가 필요로 할 때 다가와준 손길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리옹에서의 그 경험은 종교라는 틀 안에서 인간적인 따뜻함과 연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신앙심이 크게 성장하지 않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 따뜻한 손길들을 기억하고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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