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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빕 Dec 21. 2024

'관광객'이라 입장하지 못한 소르본

그렇다면 내가 이 학교의 '학생'이 되어 들어가고 만다




유럽 땅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생테티엔에 있던 시기에,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 다솜이가 유럽 여행을 왔다. 파리에도 며칠 머문다기에 나도 예진이랑 파리 여행을 잡았다. 그때도 지금도 한국에 사는 친구가 여행 오는 건 매우 큰 이벤트였다. 드문 일이기도 하고 너무 반갑기도 하고. 다솜이도 한국에서 다른 친구와 함께 여행을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정을 함께 하지는 않았다. 대신 넷이서 함께 저녁 식사 한 번을 하기로 했다. 그 외의 여행 기간은 예진이랑 파리를 둘러보는 데에 쓰기로 계획했다. 그나마 어학 한 학기가 지난 상황이었고 나름 여행용 의사소통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소르본 탐방기: 입장금지 당한 '대학 캠퍼스'


우리는 여러 미술관과 관광지를 일정에 넣은 대로 돌아다녔다. 판테온을 구경하려고 5 구로 이동했고 소르본 대학도 일정에 체크해 두었다. 마치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가고 싶은 대학 탐방을 하듯이 가보려는 것이었다. 학교 캠퍼스를 보고 나면 좀 더 공부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원래 대학 탐방의 목적이 그런 거니까.


학교 건물로 왔는데 정문이 어딘지 일단 너무 찾기 힘들었다. 제일 정문 같아 보이는 큰 문은 아예 완전히 닫혀있었다. 학교가 무슨 성처럼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담장에 있는 몇 개의 작은 문마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출입구를 찾다가 지친 우리는 경비원에게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무엇을 하러 들어가는지 우리에게 되물어서, 학교 캠퍼스를 구경하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경비원 아저씨가 웃으면서 여기는 관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은 강의실이 있는 건물은 못 들어간다 해도 대학 캠퍼스가 다 개방되어있다 보니 아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지? 이거 혹시 인종차별 아냐? 우리만 못 들어가게 막고 있는 거 아니야? 생테티엔에서 인종차별로 거칠게 다뤄졌던 우리는 이 지점을 의심했지만, 경비원은 계속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돌아서서는 그냥 담장에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었다. 쳇, 여기 내가 들어가고 만다.


입장 금지에서 입학 허가로, 이제는 내 학교


그리고 2년 후, 그 대학에 합격했다. 리옹에서 파리에 있는 대학에 1 지망으로 원서를 우편 접수했다. 시간이 두어 달 때쯤 흐른 후에 메일이 먼저 왔다. ‘J’ai le plaisir…’로 시작하는 합격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외국인 학생 합격자들을 모아 따로 단체 메일을 보내준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내가 보낸 지원서에 합격 도장이 찍혀서 집으로 우편물이 날아왔다. 살면서 원하는 기관에 합격해 본 일이 뺑뺑이로 돌린 고등학교 1 지망 이후로 없었는데 너무 행복했다.


올해에 학교가 안되면 어떻게 하지? 어학을 1년 더 해야 하나? 어학은 그만하고 싶은데.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없는데.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백번은 들었던 시기라 일분일초 피가 마르고 있었다. 학교 지원서를 작성할 때부터 사실 이미 우울증 증세는 조금씩 오고 있었다. 외부 교류 없이 집에 박혀 같은 내용의 텍스트만 붙잡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사람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 발표가 나기 직전, 우울감은 극에 치달아 있었다. 지원서와 함께 냈던 델프(DELF) B2 성적표에 찍힌 숫자가 썩 좋은 것도 아니었고 내가 쓴 동기서는 보면 볼수록 구렸다. 그때는 그 어떤 누구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족조차도.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구한 건 그저 천운이 닿은 합격 소식뿐이었다. 모든 게 풀리는 느낌이라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파리 여행에서 외부인이라 ‘못 들어갔던 학교’는 이제 내가 다닐 학교가 되었다. 그 뿌듯함이란! 지금까지도 그 합격 메일을 받은 날의 기쁨은 내 삶의 큰 전환점 중 하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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