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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올디 Sep 24. 2024

덕후가 미래다

한 분야를 깊게 좋아한다는 것

덕후 :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덕후는 곧 마니아와 닿아 있다. 어떤 분야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우리 일상에 맞닿아 있기보다는 전문성을 띠거나 학문의 측면에 가깝다.

 그에 반해 덕후 또는 마니아는 흔히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인식에 소위 '돈도 안 되는 것'에 몰두한 사람들을 칭한다. 예를 들어, 한 가수를 아주아주 좋아해서 그의 음악에 심취한다던가, 특정 영화 장르에 몰두하여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다던가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덕후와 전문가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예체능 쪽의 덕후가 발전하면 소위 평론가 또는 비평가로 불리는 전문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작년 이맘때쯤, 아내와 함께 경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인상 깊은 세 분의 덕후를 만났다.

처음 두 분은 숙소 근처 맥주 집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었다.

 아내와 여독도 풀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눌 겸 숙소 주변에서 별점이 높은 곳으로 향했다. 사실 나와 아내는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기왕 온 여행이니 맥주나 한잔 해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거의 사장님의 포스가 풍기는 직원 2분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Bar 자리에 앉았는데, 맥주 추천을 부탁하니 맥주에 대한 설명을 아주 상세하게 해 주셨다.

 보통이 아닌 느낌이 들어 대화를 몇 마디 나눠보니 한 분은 맥주가 좋아서 경기도에서 경주까지 내려와 일을 하신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분은 회사를 다니면서 이 맥줏집 단골손님이었는데, 맥주가 너무 좋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맥주 집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맥주에 몰두한 덕후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앞서 말했듯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두 분이 해주는 맥주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추천해 주는 맥주를 마시니 맥주가 절로 술술 들어갔다. 나는 맥주는 그저 흔히 아는 맥주맛만 난다고 생각했었는데, 거기서 추천해 준 맥주는 와인맛이 나기도 하고, 위스키 맛이 나기도 했다. 맥주의 세계는 정말 넓고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맥주 집에서 직원 분들이 추천해 주신 카페로 갔다. 경주에서 아주 유명한 카페인데 사장님이 커피에 진심인 분이라 사장님이 내린 커피를 마시면 그 맛이 다르다고 했다.

 아침 8시에 문을 여시는데 보통 카페보다 일찍 문을 열었는데도 안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사장님이 커피를 내려주셨는데, 커피를 직접 서빙하시면서 각 커피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해주셨다. 커피 원두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커피를 어떻게 로스팅했는지, 커피를 어떤 방식으로 내렸는지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야말로 고수의 향기가 풍겼다. 너무 맛있어서 카페의 캡슐커피를 구매했는데, 캡슐커피도 정확히 몇 초를 내리면 된다던가, 물을 몇 밀리리터 넣으면 맛있다던가 하는 식의 아주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아내와 경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덕후가 미래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맥주나 커피와 같이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진짜 그게 너무 좋아서 푹 빠져있는 사람들이 얘기해 주고 추천해 주는 것은 만족감이 달랐다. 본인들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니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나,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고, 내가 더 알고 싶고 더 즐기고 싶어서 하는 공부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아주 세세한 것까지 알고 있고, 그것을 재밌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덕후의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한다.

 요즘은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 정보는 차고 넘치고, 원한다면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넘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가진 정보를 공개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근데 이 콘텐츠라는 것이 예전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직업이라 함은 직장을 다니거나, 창업을 한다거나, 전문직에 종사한다거나 하는 것을 직업이라고 불렀다면, 요즘은 콘텐츠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점에서 '덕후'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 덕후들은 아주 좁은 분야를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게 맥주가 될 수도, 커피가 될 수도, 볼펜이 될 수도 있다. 덕후들이 진짜로 좋아서 공부한 내용은 실생활에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그것은 곧 콘텐츠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한다. 사소하지만 내가 정말 몰입할 만큼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면 누구나 그 분야의 덕후가 될 수 있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봐주시는 분들은 어떤 것의 덕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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