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으면 시간이 생겨도 책을 펼치기 어렵다. 그래서 요즘엔 출퇴근길에 독서를 가장 많이 한다. 지하철에서는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된다. 사람도 많고, 흔들림과 소음도 심해서 집중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데 참 희한하다.
그렇게 책에 빠져서 가다 보면 종종 내릴 곳을 지나친다. 곧바로 알아차릴 때도 있고, 두세 정거장을 지나서야 알아차릴 때도 있다.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짜증 날 법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싫지 않다. 아니, 은근히 뿌듯하기까지 하다.
허세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만큼 책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뭐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과거를 생각해 보면 내가 책을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변화이다.
어렸을 때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컴퓨터 게임밖에 없었다. 게임만 덜 했어도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 정도로, 그 당시의 나는 심각한 게임 중독이었던 것 같다.
천만다행으로, 그 와중에도 관심 있는 분야가 있었고, 그걸 전공하겠다고 어찌저찌 대학에는 갔다. 문제는 통학 시간이 왕복 네 시간이 넘었다는 것. 철없던 스무 살 때도 그 시간이 아까운 줄은 알았나 보다. 대중교통에서 읽기 위해, 난생처음 자발적으로 책 산 걸 보면 말이다.
이른 시간,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그렇게 한 두 권씩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결말에 진짜로 닭살 돋는 경험도 해보고, 너무 슬픈 나머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보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어느새 책을 꽤 가까이하게 되었다.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느린 변화였다.
식상한 말이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 했다. 게임에 버린 과거의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지만, 그걸 알기에 지금은 시간을 보다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출퇴근 길의 독서가 대표적인 예이다.
내릴 곳을 지나쳤지만, 오히려 좋다. 책 읽을 시간이 늘어난 셈이다. 유튜브나 SNS를 보며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홀로 독서할 때 느껴지는 작은 승리감은 보너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