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멈가 Jun 08. 2024

예민한 사람을 위한 마법의 주문




예민한 성격이 섬세한 작업을 할 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상 중에는 대개 단점으로 다가온다. 작은 것에도 크게 신경 쓰니,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불편하다. 완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그러한 불편함을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민한 사람은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산다.



문제는 집에서까지 가면을 쓰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날선 예민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다치게 할 수 있다. 나는 둔감한 아내 때문에 심기 불편할 때가 많은데, 처음엔 그런 아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만 다시 한번 체득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의 잔소리를 힘겨워했다.



그로 인해 다툴 때가 잦았고, 나의 예민함 때문에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바꾸려는 생각을 그쳐야만 했다. 여전히 욕실 앞에 벗어둔 양말을 보면 잔소리가 목젖까지 올라온다. 그럴 때 마법의 주문을 되뇌면, 놀랍게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마법의 주문이다. 따지고 보면, 양말이나 수건쯤 바로 바구니에 넣지 않아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단지 생활 습관이 나와 다를 뿐이다. 그 사실을 상기하면, 관계를 망치는 일 따위는 없어진다.



이 주문은 집에서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통한다. 예민한 사람에게 세상은 온통 시끄럽고 성가신 일로 넘쳐난다. 지하철에서 치고 가는 사람,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그냥 모든 게 심기 불편하다. 이제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다 사정이 있겠지.



때로는 예민함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둥근 지구에서 뾰족하게 살아봤자 나만 손해이다. 이미 이렇게 생겨먹은 성질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인생이 편하다. 필요할 땐 한껏 살리고, 때로는 내려놓을 수 있다면, 예민함은 엄청난 재능이자 무기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갑옷을 두르고 출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