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나면, 익힐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준다. 이해 못 하면 더 쉽게 설명한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한다. 버벅거리면 시간을 준다. 업무상 내가 잘하는 게 있다면 바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타인에 대한 인내심은 대개 자신의 역량에 달렸다. 빨리 배우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 깊이 헤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조곤조곤 시작하지만, 끝내는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쯤 되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익숙지 않지만, 그런 순간만큼은 나보다 적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한다. 백지상태로 시작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그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생태계는 그다지 공평하지 않아서, 어떤 이들은 이미 뒷다리가 나온 상태로 시작한다. 또 어떤 이들은 꼬리가 튼튼해 제법 빠르게 헤엄친다. 반면 어떤 이들은 뒷다리도, 튼튼한 꼬리도 없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다리 쓰는 방법이 아니라, 호흡하는 방법부터 가르쳐 줘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감정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묻는다. 나의 인내심은 그 시절 내 모습을 기억하는 데서 온다. 내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듯이, 이제 내가 도움을 줄 차례인 듯하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생태계는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