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
마음까지 어른은 아니지만, 편의점에서 더 이상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는 걸 보면 외모만큼은 확실히 어른이 된 듯하다. 이제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도 주된 대화 주제가 돈, 주식, 부동산이다. 우리만큼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나 보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근데 넌, 행복의 기준이 돈은 아닌 것 같아."
그때는 그저 '그런가?' 하고 넘겼다. 주변 모두가 돈 이야기를 하니, 나도 잘 벌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의 기준은 당연히 돈이라 믿었다.
명절의 복작거림은 정겹지만, 동시에 벅찼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혼자 맞은 휴일 아침, 한상 가득한 아침밥 대신 내가 좋아하는 밤만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하루를 시작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친구의 말이 옳았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 그 한 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사실을, 밤만쥬를 먹으며 깨달았다.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다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그런 자유도 누릴 수 있다.
혼자 있을 공간에도, 커피 한 잔의 시간에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가격표가 붙어 있으니까. 결국 돈은 행복의 기준은 아닐지언정, 행복의 조건이 된다.
팔조차 옴짝달싹 못 하는 지옥철 안에서 나는 속으로 다짐하곤 한다. ‘언젠간 이 망할 서울을 떠나고 말 거야.’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곳에 붙어 있는 건,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 돈이 전부가 아니라면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하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돈 없이 행복을 찾는 건 낭만이 아니라, 낭패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