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르는 소 Nov 11. 2024

그래서... 신앙이 필요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2>  리뷰 2

*리뷰 1에서 이어집니다.


박정자는 시즌 1에서 최초 공개시연을 당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마중물의 역할을 한다. 새진리회의 교주와 교리를 공개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사람이다. 기독교의 세례요한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메시아의 재림을 예비한 세례요한은 나중에 머리가 잘려 죽음을 당했는데, 새진리회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 젖힌 박정자도 결국 죽임을 당했다. 별 죄가 없어 보이는 박정자의 시연예고에 사람들은 이를 자연재해로 보지 않고 신의 의도와 정의를 찾는다며 대중을 선동하고 폭력을 기획했다. 다시 살아 돌아온 박정자의 이야기엔 종교지도자들이 귀 기울이지 않았고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박정자는 말한마디 하지 못한 채 대중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정자는 민현주한테만 세상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면서. 박정자는 시연 이전의 세상에서도, 부활 이후의 세상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메신저 역할이었지만 사람들이 듣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좋은 세상을 충분히 만들 수가 있었다.


신이 현실세계를 지옥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오지원의 남편 천세형이 죽어가면서 얘기를 하는데, 이는 신의 의도이기 전에 인간의 선택이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분열되었고 싸웠고 파멸을 선택했다. 지금의 전 세계적 갈등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사람이 지옥을 만들었다면, 반대로 천국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로도 볼 수 있을 텐데...  


4. 부활은 희망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세계 3대 종교중 지도자가 현세계로 부활한 교리를 갖고 있는 것은 기독교뿐이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부활은 모든 교리의 완성이자 진리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천국과 지옥을 믿기 전에, 부활을 믿고 받아들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종교가 천국과 지옥의 개념을 갖고 있는데, 감독은 기독교에서 부활의 콘셉트를 갖고 왔다. 시즌 1에서 박정자가 현실 세계로 다시 살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며 '부활'의 주제가 시즌 2의 주요 줄거리로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놓고 시연을 당한 정진수도 다시 부활했고 시즌 3을 예고하듯 아기 재현이의 과거 반전 모습도 보여주며 시즌 2가 끝났다.


기독교를 얘기하는 것은 감독이 왜 부활의 콘셉트를 가져다 썼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스토리전개상 극의 반전효과를 강조하면서 단순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극에서 부활자는 총 3명인데 기독교에서 3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일까?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주장한다. 성부성자성령의 세 가지 영이 하나의 완벽한 영성체로서 이 삼위일체가 온전한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30세에 세상에 등장해 3년간의 공생애를 거쳐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골고다 십자가에는 3명의 죄수가 매달렸다. 3명이 부활함으로 지옥 같던 세상에 신이 부활자들의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십자가에 매달려 예수를 비웃어 지옥에 갈 것이라던 한 명은 정진수처럼 지옥의 사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예수를 믿은 나머지 한 명처럼 박정자는 부활자로서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천국(현실 세계로의 부활)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탄 같은 악령이 된 정진수와 죽음을 예지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박정자,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인 아기 재현이의 능력은 무엇일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는 정진수의 경험에 근거한 관념이나 박정자의 깊은 후회와 그리움 등이 없을 것이다. 부모의 희생 때문이 아니라 시연당한 뒤 지옥의 관념을 넘나들게 없으니 재현이는 곧바로 부활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화지 같은 재현이의 눈앞에 어떤 세상을 그려낼지, 엄마가 되어 주겠다고 선언한 민혜진의 마리아적 행동이 재현이와 세상에게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지가 궁금해졌다. 시즌 3에서 보여줄 세상은 재현이가 구원자로서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세상은 사람들이 희망과 사랑을 실천하는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구원자인 메시아를 인간들이 다시 십자가에 매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는 자기의 고통을 자연재해 속 피해로 치부하였고 다른 이는 종교적 헌신으로 받아들였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잇속과 권력을 잡는 도구로 활용하였고 어떤 이에겐 자기 신념을 곤고히 하는 가치관으로 삼았다. 신을 경외하기도 하며 이용하기도 하였다. 누가 누굴 탓하랴. 여기엔 모두 각자가 정의롭고 선하며 자유롭다. 각자가 자기 인생의 구원자다. 그런데 결국, 각자 모두가 지옥을 만들었다. 신의 '의도'는 정해져 있거나 구체화된게 아니다. 인간들 각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그래서 신이 필요하고 그러니, 신은 존재한다. 신앙을 갖고 살아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