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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닿 May 12. 2021

이게 진짜 약 때문이라고? 의심하게 된다. - 1

무서운 스테로이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엄마 작년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곧바로 항암하고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까지 잘 마쳤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 무균식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딱히 다른 점 없이 잘 지냈다. 순한 놈이라서 항암 2번 하는 것도 1번만 할 정도였으니 금방 괜찮아지겠지? 대수롭지 않게 가족 모두 생각했다.

 그런데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올라오던 겨울부터 엄마가 달라졌다.


 먼저,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정신을 약이 조종한다."라고 할 수 있겠다.




 온몸이 간지럽고 붉은 반점이 번지는 숙주 반응이 한참 올라오던 초창기, 12먹었을 때는 힘이 넘쳤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1시간, 2시간 자고도 멀쩡하게 일을 했다.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넘쳐서 곤란하게 만들었다. 쇼퍼홀릭처럼 매일 택배 박스가 세 개는 기본으로 왔다. 한눈 팔면 홈쇼핑에 전화해 주문을 넣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지 하던 가족이 시간이 지나자 하나같이 '네 엄마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엄마는 홈쇼핑 VVIP 멤버쉽 회원이 되었다.


 먹는 것도 얼마나 잘 먹는지. 고기가 매 식사마다 올라왔다. 집에 고기가 있어서 사지 말라고 말려도 샀다. 있는 고기를 까먹고 또 산다. 비싼 한우가 포장된 채 그대로 썩어 몇 번을 버렸다. 아깝다고 말을 하면서 뒤돌아 또 고기를 산다. 닭, 오리, 돼지, 소. 종류 가리지 않고 사서 먹었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그렇게 사서 먹었다. 붓는 것 또한 부작용이라는데 살도 쪄서 진짜 호빵맨처럼 얼굴이 동그랬다.

 나는 이후로 고기를 웬만하면 쳐다보지 않는다. 질려서.


 감정 또한 지나치게 들쑥날쑥했다. 젊은 사람의 세포를 이식 받아서 그런지 힘이 넘친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기분이 업되어 있어 생기발랄했는데 심사가 한 번 뒤틀리면 울고 욕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걸 가장 가까이서 봤고 경험했다. 엄마와 쇼핑 문제로 제일 많이 싸운 사람이 나였으니까.


 그걸 왜 사냐는 나보고 웃으며 "씨발년아, 내 돈 쓰겠다는데 니가 왜 난리야."라고 소리쳤다. 순간 기가 막혀 헛웃음을 뚝뚝 끊어 뱉었다.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삼키며 문가에 몸을 기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연아, 미안해. 진심이 아니라 장난." 샐쭉 웃는 얼굴과 함께 따라왔다. 정말 장난이었다는 듯 개구진 표정으로.


 아 빌어먹을 스테로이드.


 그렇게 위안했으나 웃는 엄마 표정과 욕하던 목소리가 남아있는 것을 보니 어딘가에 흉터로 자리 잡고 있나 보다.




 지금은 많이 줄어서 2알 먹는데 우울증세가 심각하다. 병원에서는 지금 먹는 수보다 하나 더 나오는 오류를 범해서 우울증상이 나온단다. 뇌는 똑똑하면서 멍청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약에 적응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아무튼 그렇단다.

 결국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답변이다.


 우울증세가 심하지 않았을 때 엄마는 요양 병원에 2주간 있었다. 집에 있으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증세가 나온다며 환경을 바꿔보려고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참 좋은 선택이지. 스스로 해 먹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엄마였으니까 편한대로 하시라고.


 그런데 돌아온 엄마는 우울증세가 더 심해져 돌아왔다. 수면제가 없으면 잘 수 없었고, 목소리가 무척 작았다. 어? 어? 뭐라고? 하고 몇 번이나 되물어 볼 정도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물론 지금안 한다고 말 못 하지만 그때는 입만 열면 "죽고 싶다. 죽으면 편하겠지? 살아서 뭐해. 눈뜨자마자 약 먹기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약 먹는데. 이게 사람 사는 꼴인가. 근데 죽을 용기가 없어서 자살도 못 하겠다. 그런 사람들은 진짜 용기가 대단한 사람들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주 속이 뒤집어진다.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상상을 계속한다. 퇴원하고 열이 난 적이 있었는데 공포심에 벌벌 떨었다. 본인이 코로나에 걸렸다며 거의 확신을 하고 있었다. 다른 가족 모두 음성일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불안해하는 엄마를 위해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은 다음날, 다시 열이 올라 불안에 떠는 엄마를 보며 안 되겠다 싶었다. 물론 못 간다며 버텼지만 설득해 끌고 응급실을 찾았다. 코로나 검사를 받았으니 일단 음압격리실로 가 격리조치를 받았다. 막상 병원에 갔을 때는 열이 안 나서 수액 맞고 혹시 몰라 해열제를 처방받아 퇴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의 열은 요로감염이었다.

 월요일. 내가 깨어난 8시부터 엄마는 나를 볶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인이 또 확진자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엄마. 그 사람들도 출근을 해야 할 거 아니야. 9시까지 좀 기다려 봐."

 한숨을 내쉬며 부산스럽게 움직여 아침을 먹이고 9시 10분쯤. 문자가 도착했다. 결과는 음성. 거 봐 내가 그랬잖아. 음성이라니까. 하는 나를 흐린눈으로 멍하니 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나서도 한참동안 핸드폰을 바라보다 내려놓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안심하나 보다 싶었으나 저녁 시간, 8시 뉴스를 트는 순간 달라졌다.


 몸을 덜덜덜, 사정없이 떨며 움츠렸다. 아진 목소리가 몸처럼 사정없이 떨렸다. 말을 더듬으며 티비를 꺼달라 청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공황발작이다.

 빌어먹게도 엄마에게 공황장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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