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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Nov 12. 2022

당신의 개는 안녕하신가요?

마냥 미워할 수도 마냥 사랑할 수도 없는 그 존재.


오늘은 왠지 ‘개’에 대한 나의 경험들을 쓰고 싶었다.


나는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키울 생각은 없지만 미국에 살면서 사람만큼 자주 마주치는 존재가 ‘개’이기 때문이다.


곧 네 돌이 될 나의 딸아이의 최애 장난감은 “멍멍이” 장난감이다. 딱 보아도 귀엽고 건전지를 넣으면 찍찍찍 소리를 내며 앞으로 가는 움직임을 반복하는데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딸아이의 최애 멍멍이



그리고 우리 집에는 또 다른 멍멍이들이 있는데 이 실내화다. 따뜻하고 보슬보슬한 털 느낌이 사랑스럽다. 특히 아이가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백배로 사랑스러워 보인다.


딸아이가 신는 멍멍이 슬리퍼


이렇게 “개”라는 존재는 우리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나는 큰 개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 공포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큰 진돗개들이 쫓아오는 상황을 겪었고, 그 후 중학교 시절에는 집에 가는 길목에 마당에 풀어놓은 큰 진돗개들이 나만 지나가면 철창에 몸을 부딪히며 위협을 했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체구가 작고 키가 작아서 큰 개들에게 타깃이 되는 걸까 매우 억울하기도 하고, 공포에 노출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자주 들리는 안타까운 소식들도 내 공포에 한몫을 하는데, 어느 주에서 같이 살던 반려견이 아기나 약자들을 이유 없이 물어 죽인 사건들을 들으면 아무리 충성심이 강하고 잘 훈련된 개여도 짐승의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


그동안은 개로부터 공격받는 일이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개를 키우지 않고 개와 가깝게 지내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딸아이를 데리러 집 단지를 나서는 와중에 이웃집의 열린 차고 문을 통해 줄이 채워지지 않은 개가 나를 향해 짖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나는 그때 임신 7개월째였고 배가 많이 나오고 슬리퍼를 신은 탓에 그저 옆에 있던 쓰레기통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 개의 주인들은 그 상황에서 No! No! 반복해서 외치며 개를 따라 뛰어왔고 천만다행으로 그 개는 내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주인들은 너무나도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지만, 나는 임산부이기에 제일 먼저 뱃속 아기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아기에게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이 쉽게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너무 무기력했던 나의 몸짓과 패닉 상태를 기억하며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페퍼 스프레이든 삼단봉이든 여러 가지 호신 용품들이 시중에 있지만 매우 급박한 상황에 그런 물건들은 활용하기가 힘들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 끝에 나는 쇠로 된 심지가 들어있는 나무 봉을 샀다. 한 손에 들기 좋은데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의 시선도 좀 배려해서 나는 줄을 달아서 크로스 백처럼 메고 다닌다. 오른손 가까이 봉이 매달리도록 크로스로 메는데 언제든지 봉의 손잡이를 잡을 수 있게 머리를 써봤다.




이걸 몇 달째 메고 다니는데 실제로 쓴 일은 없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처음 메고 다닐 때는 산책하며 만나는 개 주인들의 눈치도 많이 보이고 민망하기도 했는데, 내가 공격당하고 물리는 것보다 마음 편안하게 나를 지킬 호신용품이라고 생각하니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졌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이야기는 믿지 않는다.


내가 하도 봉을 메고 다니니까 가끔 밖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큰 개를 산책시키는 이웃 주민은 만나자마자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아기예요.”라며 먼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웃으며 “그렇군요” 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예방은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달 전의 이야기이다.


목줄을 채우면 주인으로서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하니까 길에서 목줄 채운 개들을 만나면 긴장은 조금 되어도 크게 무섭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왜 이렇게 두려운 상황들을 겪고 목격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영화에 나올 법한 상황을 눈으로 보았다.


아래 사진의 나무 펜스(울타리)를 잘 보면 긴 나무판자들이 줄지어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려고 집을 나서서 걷던 중이었고 집 근처 옆 골목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바로 이 나무 울타리 앞을 한 여자가 자신의 개를 목줄 채운 채로 데리고 지나가던 중이었던 것 같다. (그 울타리 안쪽은 백 야드가 위치해있는데 미국 사람들은 흔하게 그 백 야드에 개를 풀어놓고 자유롭게 키운다.)


누군가 개를 산책시킨다고 가정하면 어떤 주택가를 지날 때 울타리 안의 개들과 짖고 경계하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주인이 개를 달래서 다시 가던 길로 데리고 갈 뿐 싸움이나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본 상황은 좀 달랐다. 여자가 데리고 있던 개는 울타리 앞을 떠나지 않고 짖으며 싸우려는 태세였고, 울타리 안의 개는 짖는 소리만 들어도 큰 개임이 분명했다. 그 상황에서 여자가 자신의 개를 안고 들고 가면 좋았을 텐데, 흥분한 울타리 안의 개는 나무판자로 된 울타리를 몸으로 박치기했고 나무판자들이 밖으로 우수수 쓰러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태로 목줄만 손에 잡은 채로 “No No No No” 반복하며 큰 비명을 질러댔고 나는 판자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며 있는 힘껏 달려서 도망쳐 집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복구된 나무 울타리



바로 남편을 불러 차를 끌고 그 앞을 지나가니 그 여자와 개는 급하게 피했는지 안 보이고 덩치 큰 까만 개가 그 앞에 앉아있었다. 그 여자 대신에 다른 동양인 아저씨가 본인의 작은 개를 꼭 끌어안은 채로, 목줄 없이 인도에 앉아 있는 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려하며 서서 생각 중인 것으로 보였다.


아래 사진처럼 까맣고 큰 개가 목줄도 없이 인도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구글 이미지 - 블랙 셰퍼드


다행히도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은 듯하고 내가 아이를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바퀴 둘러봤을 때 안 보였던 걸 보면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보였다.


무너진 나무 울타리는 그다음 날 복구가 되어 있었고 가끔 그 집 앞을 지나가면 큰 개 짖는 소리가 여전히 들린다.


개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일 수 있다.


개를 소중히 여기고 키울수록 더 훈련하고 위험한 순간들을 예방하는 모습들이 필요하다. 간혹 목줄을 풀면 안 되는 방침이 있는 공원들을 가보면 그 방침을 어기고 목줄을 풀고 개들을 자유롭게 뛰놀게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조그맣고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그 개들이 아무것도 안 했음에도 괜히 그들이 원망스러워진다. 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개들은 남들에게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다는 것, 그것만 좀 기억해주길 바란다. 사실 내 아이도 우리 가족 눈에만 예쁘지 남들 눈에 예쁘지 않다. 그렇기에 더 매너를 가르치고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들을 못하게끔 훈육해야 한다. 이 기본적인 상식을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기억해주면 참 좋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인 나도 명심할 테니 말이다..







여담으로 나는 작은 강아지들에게는 왠지 정이 간다.


키워보거나 키울 예정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강아지들, 고양이 인형들도 만들고 감상하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짐을 느낀다.


큰 개들과 인연이 없다는 것은 경험들로 인해 확실시되었고, 그저 더 이상은 개들과 공포스러운 상황에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에너지 소모가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을 내려놓으려면 아니 담대해지려면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오늘도 나를 만드신 그분께 구해야 한다. 담대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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