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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Oct 29. 2016

드디어 말 탔음

말의 고장에 온 지 9개월이 넘었습니다만

사실 친정 가족이 방문했을 때, 말투어를 하면서 당연히 포함될 것이라고 믿었던 말 타기가 빠졌다. 더운 날씨에 진을 빼면서 미니버스에서 네 시간 고문당한 그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어쨌든 이렇게 날씨도 훨씬 좋아진 시절, 공부 때문에 바빴던 남편이 어렵게 짬을 내서 마침 재량휴일인 아들과 나들이를 나섰다. 이번에 간 곳은 켄터키 호스 파크. 지난번 투어 때 중간에 화장실 들르려고 들어갔던 곳인데, 실제로 관광을 하진 않았다. 입장료와 말 타는 비용을 합하면 아주 싸진 않은데(인당 36불) 그래도, 진짜 말! 탑니다.


공원에는 전시관도 있고, 명마였던 맨오워(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도로명이기도 함)의 동상도 있고, 기계말도 있고, 하여간 말 동상이랑 말 관련된 전시는 질리도록 볼 수 있다. 켄터키는 경마가 금지된 북부 덕분에 경마를 즐길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었고, 원래 경마 좋아라 하는 남부인도 북부인도 신나게 말타령을 벌이게 된 곳이다. 게다가 워낙에 풀밭이 좋아가지고, 여기에서 아라비안과 교배하여 만든 써러브레드 생산이 아주 꽃피웠다. 경주마의 요건에 반드시 써러브레드의 핏줄이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라니까.


라이딩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아서 먼저 브리드반에 가서 품종을 소개하며 분장한 기수들이 말을 직접 보여주는 쇼를 봤다. 말은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꽤나 개성 있는 말들이 있더라고. 다섯 종류의 말이 선을 보인 후에 마지막에 성조기를 들고 한 직원이 달리는데, 관객들이 기립해서 국기에 대한.... 아우씨, 이런 것 좀 하지 마!!


어쨌든 오늘 메인은 말 타기여서 열심히 집합을 했더니, 일단 말 타다 뭔 일 생겨도 기본 네 책임임.. 이라는 서류를 작성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 앞 순서 팀이 말을 타고 돌아왔다. 햇빛에 그을린 여자 직원이 '오늘 이게 몇 번째인지...'가 티나는 귀찮은 태도로 뻔한 주의사항을 읊는데, 그래도 커다란 동물이 연관되는 액티비티다 보니 주의사항이 뻔하면서도 많긴 많았다. 기본적으로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느라 정해진 트레일을 걷는 말들이라 특별히 몰 필요는 없는데, 기본적으로 고삐를 당겨 오른쪽, 왼쪽, 정지 하는 방법을 배웠다. 한 타임에 열 명 남짓이 한 팀이 되어 타는데 직원들이 누가 어떤 말을 탈 것인가와 어떤 순서로 탈 것인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첫 번째로 말에 오르게 된 나는 식구들과 헤어졌다.


내 말은 갈색이었고 이름이 스타라고 하는 숫말이었는데, 이놈이 으찌나 나대는지, 전혀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은 고삐를 중간에 꽤 여러 번 사용했다. 앞말의 궁뎅이에 붙어서 일렬로 가야 하는데 얘가 자꾸 답답한지 옆으로 빠지는 거다. 제주도에서 몇 분 탄 것 외에는 전혀 경험이 없어서 처음엔 긴장했는데(난 과거에 마차 끄는 말에게 팔을 물린 적이 있습니다.... 말 이빨 무섭습니다...) 워낙 애들이 훈련을 잘 받기도 했고 일렬로 가는 꼴이 우습지만 그럭저럭 누가 고삐를 잡아주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걸어가니까 기분이 한껏 고양되어서 30분간 초원과 말의 진동을 신나게 즐겼다. 탄 지 20분 정도 되니까 엉덩이가 좀 아프기 시작하더라.


엉덩이가 아픈 건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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