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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ul 18. 2016

라스베가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CSI뿐이야

그랜드캐년을 마저 좀 구경한 후 라스베가스로 떠나기로 한 날, 조식을 하면서 약간 못마땅한 내게 아들이 왜 라스베가스에 그렇게 가기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밤문화와 도박이 메인인 도시에 가족과 함께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친구면 모를까. 그러자 아들이 한 마디 또 묻는다.
"엄마랑 아빠는 친구 아니야?"
임기응변 하면 또 나 아닌가.
"음... 친구는 아니고 애인이야."
 
원래 일출도 볼 예정을 세웠었지만 무리하지 말자는 쪽으로 노선이 변경되어,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체크아웃을 하며 다시 60마일을 달려 국립공원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동쪽으로 오렌지 라인 셔틀을 타고 구경했다. 다람쥐가 나타나서 관광객에게 삥을 뜯는다. 뒷발로 서서 앞발을 앙증맞게 내밀면 뭐가 생기기 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영악한 놈이었다. 표지판에서 야생동물에게 음식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꼭 주는 사람 있더라.


버스를 타고 다시 비지터센터로 돌아온 다음에 데저트 포인트를 보기 위해서 우리 차에 올랐다. 생각보다 멀었다. 한참만에 도착해서 인디언 양식으로 세워진 전망대를 올라가는데 또 호흡곤란이 왔다. 이놈의 너덜너덜한 체력 같으니라고. 근처에 있는 절벽까지 다녀오겠다는 두 남자를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꽤 멀리 다녀온 듯, 거의 40분 후에야 땀에 흠뻑 젖어서 나타났다.
이제 충분히 봤다고, 라스베가스로 떠나자고 두 남자는 매우 신이 났다.
 
어젯밤에 바가지 피자와 파스타를 먹은 집 근처에서 맥도널드로 점심을 때웠는데 생각보다 식비가 많이 나왔다. 요상한 일이었다. 하여간 라스베가스는 정말 가기 싫었는데! 항공편만 있었어도 그랜드캐년에서 바로 우리집에 가고 싶었는데! 또 끝이 없는 듯한 사막을 달려갔다. 뜨거운 낮이 끝나갈 무렵에 라스베가스에 들어섰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시내에서 많이 멀지 않았고, 주차와 체크인을 마치고 나서 서둘러 다시 나왔다. 저녁 뷔페를 할인가격에 먹기 위해서 또 ticket4tonight이라는 업체에 가서 쿠폰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라스베가스의 명물이라 하면 싼 호텔과 싼 음식이라 하길래, 오는 길에 열심히 검색을 했지만 뷔페도 할인 없이는 그렇게 싸지 않았다. 아들이 가고 싶어한 호텔 '파리'의 티켓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8시 넘어서 티켓을 샀기 때문에(내가 지갑을 안 가져가는 바람에 첫 쿠폰 판매처의 영업시간에 늦었음) 10시까지 하는 곳으로 가야 했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생각보다 디너 뷔페는 빨리들 닫더라고. 결국 그 유명한 트래저아일랜드의 뷔페 티켓을 구입했다. 빨리 먹으러 가야 하는데 뷔페 레스토랑까지 가는 건 또 험난했다. 주차가 무료인 것은 고마운데(역시 관광객 유치 수단이지만 점차 유료화할 계획이 있다고 함) 내려서 커다란 호텔의 내부에서 원하는 식당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다. 애를 데리고 도박장을 지나서 가야 했다. 어린이도 마구 들어갈 수 있는 라스베가스의 도박지상주의를 느끼면서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화장실도 도박장에 붙어 있고, 식당도 붙어 있고 과장이 아니라 도박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동을 할 수도 없었다. 9시가 다 된 시간에 입장하는 데에도 줄을 서야 해서, 도박장의 현란한 불빛과 함께 대기해야 했다. 드디어 정말 정신없이 배고픈 상태로 식당에 들어섰는데, 뷔페가... 뷔페가... 맛이 없었다. 할인해서 인당 22불 정도의 가격으로 먹었는데, 진짜 더 주고 먹었으면 억울해서 피눈물이 날 뻔했다. 샐러드바는 오픈 형식이 아니라 아줌마를 불러서 조제해 먹는 방식이라 귀찮아서 패스, 가장 먹을 만했던 음식이라곤 춘권 정도. 인도 커리는 한 입 먹고 다시는 못 먹을 정도였다. 어쨌든 고기로 배는 채우고 나서 밖으로 나왔는데, 밤이 깊어도 길거리에는 관광객이 가득하고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적어도 35도는 되는 느낌)
 
그 덥고 짜증나는 밤에 아들은 각 호텔을 다 구경하고 싶어했다. 구경하는 과정에서는 또 각 호텔의 도박장을 지날 수밖에 없었다. 술과 담배, 도박으로 흥청대는 도시 전체가 취한 것처럼 보였다. 호텔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나 장식에도 나중엔 환멸을 느꼈다. 돈을 써라, 도박을 해라, 노골적으로 벗고 유혹하는 여자처럼 라스베가스는 매력 없고 천했다. 벨라지오호텔의 아름다운 분수쇼를 보면서도 파리 호텔의 신비로운 내부 장식을 보면서도 순수하게 감탄할 수가 없었다. 길거리의 군중도 꼭 이 도시처럼 막나가는 사람들뿐이었다. 자기가 건너가려는데 지나간다고 택시에다가 마시던 소다컵을 던지고 깔깔대는 청년도 봤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중에는 갑자기 스케이트보드 플래시몹이라도 하는지, 차도와 인도에 온통 부딪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엄청난 속도의 보더들이 떼로 나타나서 아들이 크게 부딪칠 뻔했다.
 
숙소에는 자정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이제 정말로 모든 일정이 끝이라는 것에 안도하며 라스베가스와의 이별을 기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모르겠다, 아들이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나도 술담배에 기분 좋게 취해서 유쾌한 진짜 친구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이 푹푹 찌는 열대야를 깔깔거리며 즐길 수 있었을까? 정말로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이 도시는 진정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미국 서부여행의 대미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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