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일주일
5월쯤이었나, 아버지의 주도 하에 오빠 가족까지 6명이 우리 "미국" 집에 방문하기로 확정이 났다. 그들은 우리 세 식구와 함께 미국의 동부나 서부도 여행하고 싶어했지만 우리 계획은 이미 모두 확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었고(솔직히 연령대가 넓은 9명이 함께 관광한다는 생각만 해도 미국여행 자체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나로선...) 한 달쯤 후 샌 프란시스코와 엘에이를 거쳐 우리 집으로 온다는 계획이 정말로 확정됐다(비행기표를 사버렸다는 뜻). 우리 아들과 절친한 첫 조카 아이만 열흘 정도 더 머물다 시카고에서 직항으로 귀국하기로 했다.
한국의 평범한 직장인인 오빠 부부는 보름의 휴가를 내느라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우리가 서부 여행 후 쉬었다가 동부 찍고 집에 온 날이 7월 9일, 친정 가족이 오는 날은 18일이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멤버들이라 엄청난 고기를 사다가 냉장고가 터지도록 넣어두었다.
18일에 거의 두 시간 걸리는 노던 켄터키로 차를 몰고 나가서 엘에이에서 돌아오는 여섯 명을 기다렸다. welcome point에서 30분 넘게 대기한 결과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엄마는 나와 포옹한 후에 눈물을 보이셨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온 힘을 다해 만 일주일 동안 함께 놀고 먹었다.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흐르더니, 정신을 차리자 우린 만났던 공항에서 헤어지는 중이었다.
또 눈물을 보이는 엄마를 보고 웃었는데, 보안검색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일행을 보내고 거기 서 있어봤자 서로 좀 뻘쭘하니 집에 가자고 주차장으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기 가족은 이런 식으로 만날 수 없는 남편 생각을 해서 몰래 울었는데 이상하게도 괜찮아졌다가 다시 왈칵하고... 그게 헤어진 후 다섯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렇다.
아울렛 갈 때 굳이 아버지한테 돈을 타서 거기서 나 신발 한 켤레 사주고 남은 돈을 굳이 10달러짜리까지 싹 나 가지라고 서랍에 넣어놓고 귓속말로 속삭인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임신중에 복숭아 먹고 싶었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는 그 후 13년 동안 복숭아를 볼 때마다 꼭 내 몫을 사두시는 우리 엄마.
여기 계신 동안 상냥하게 해드리지도 못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