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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량진법잘알 Jun 19. 2022

계약서의 문장은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법령과 판결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계약서의 문장은 어법을 준수하여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바른 글로 작성하여야 . 계약서뿐만 아니라 모든 법문서가 그러해야 하고, 모든 문서가 그래야 한다. 계약서 문장의 모범이 될만한 것은 엄격한 원칙에 따라 정형적으로 작성되는 법령과 판결서인데, 아래에서는 이러한 모범적인 법문서에서 기준으로 삼는 지침을 살펴보며 추가적으로 계약서 문장이 갖추어야 할 고유한 특징에 대하여 생각해보려 한다.






판결서의 경우에는 잘 작성된 최신 판결 위주로 어떻게 작성된 문장이 잘 읽히고 그 뜻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오래된 판결에서는 문장이 복문으로 작성되고 안긴문장이 포함되어 하나의 문장이 수십 줄을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만연체는 현대적인 계약서를 작성하기에 좋은 문장이라 보기 어렵다. 문장이 길어지고 문장구조가 복잡할수록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판결서를 작성할 때 한 문장의 길이가 판결서 양식을 기준으로 3줄, 즉 90자 정도를 넘지 않을 것을 제안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새로 쓰는 민사판결서, 사법발전재단, 2015). 이 제안은 한 문장의 적정한 길이에 관하여 국어학자들은 50자 정도로 보고 있고, 법관들은 100자 안팎으로 보고 있으며, 영어권의 법률문장 책자들은 20단어 내지 25단어를 넘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 계약서의 문장도 판결서의 문장과 같이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되어야 하기에 원칙적으로는 짧게 작성하는 것이 좋다.


계약서에서 문장이 길어지는 것은 문장의 의미에 따라 조항의 구조를 다층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음에도 하나의 항(項) 모든 것을 기재하려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계약서의 조항을 작성할 때에는 조(條)·항(項)·호(號)·목(目)의 체계를 염두에 두고 문장의 의미를 구조화 하여 적절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약서의 체계에 관하여는 법제처의 법령 입안 심사 기준을 참고할 수 있다(법제처, 법령 입안 심사 기준, 법제처, 2021, 724-725면).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항(項)과 그 하위의 호(號)·목(目)들이 전체로서 하나의 목적, 의미, 내용, 생각, 사실 등을 담을 수 있도록 작성하면 될 것이다.






또한, 계약서의 문장은 인용될 것을 고려하여 작성되어야 한다. 계약서의 조항은 계약서 내부의 다른 조항에서 인용될 수도 있고 외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인용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계약서의 문장은 인용 시 의미가 왜곡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작성되어야 한다. 특히, 적정하게 정의되지 않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해당 문장을 인용하는 모든 법률관계를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유의하여야 한다.


개념을 명료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법령과 판례에서 정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별도의 조항에서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좋지만, 모든 개념을 그렇게 취급하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어야 별도의 정의가 필요하지 않을지에 대하여는 경험과 상식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법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라 하더라도 일상언어와 비교하며 오해의 여지가 있지는 않을지 주의 깊게 검토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당사자의 주관적인 인식을 나타내는 선의(善意) 또는 악의(惡意)와 같은 개념은 많은 법령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일상언어와 큰 차이가 있다. 어떠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또는 아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적절하게 풀어쓸 수 있을 것이다.


법령은 다른 법문서에서 인용할 것을 전제로 작성된다는 점에서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법령을 모범으로 삼아 계약서의 체계를 구성한다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계약서의 개별 조항들이 정확하게 인용될 수 있다. 법령을 작성할 때 고려하는 주요한 지침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하나의 항(項)의 문장이 3개 이상이 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이는 전단, 후단, 단서 등 각 문장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서의 문장을 검토하며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는, 계약서에 포함되곤 하는 표준일반조항(boilerplate clause)이나 이에 준하여 관행적으로 기재되는 조항들이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문장으로 작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장들을 모두 원하는 수준으로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이 초안으로 송부한 계약서를 검토하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계약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표준일반조항을 수정하여 회신하는 것은 소중한 협상력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불필요한 분쟁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계약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입장이라면 문장을 적절하게 다듬는 것은 바람직하고 권장할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계약서를 일회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계약서를 반복적으로 작성하여야 한다면 이후에 작성할 계약서에 대하여도 매번 동등한 수준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며 작성 가능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여야 한다. 유사한 계약서로서 동일한 것을 의미하고 있음에도 계약서마다 각기 다른 문언으로 기재되어 있다면 예기치 못한 다른 해석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좋은 문장을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상식에 비추어 적절한 수준으로 문장을 다듬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약서의 문장은 법령과 판결서와 같은 정형적인 법문서의 문장을 모범으로 삼아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계약서가 법령이나 판결서와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계약서는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 있는 두 당사자가 함께 검토하며 완성해나가는 문서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법문서에 비하여 계약서의 문장을 다듬는 것에는 훨씬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동의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하게 문장을 다듬을 계획이 있더라도 계약서를 수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방 관심과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계약서의 문장은 그 본질상 타협적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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