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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량진법잘알 Jun 19. 2022

서명, 기명, 날인, 무인

깨끗한 계약서 작성을 위한 방법론

계약서 작성 시 서명, 기명, 날인, 무인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거래계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계약서에서도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법에서는 서명, 기명, 날인, 무인의 개념을 엄격하게 구분하 사용하고 있고 판례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어음·수표행위와 같이 엄격한 요식성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잘못된 방식으로 행위하는 경우 쉽게 무효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약속어음의 배서 시에는 기명날인을 하여야 하는데, 배서인이 날인 대신 무인을 함으로써 어음행위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판례는 아래와 같다. 참고로 당시 어음·수표법에서는 기명날인만을 어음·수표행위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어음·수표법의 1995. 12. 6. 개정으로 기명날인 외에도 서명이 유효한 요건으로 추가되었다(어음법 제1조 제8호, 제75조 제7호, 수표법 제1조 제6호).


■ 대법원 1962. 11. 1. 선고 62다604 판결
배서날인에는 기명무인은 포함되지 않으므로 기명무인으로서 한 어음행위는 무효라 할 것이어서 약속어음에 수차 배서가 될 경우에 시초에만 배서가 기명무인이 되었다면 그 어음에는 본조가 규정한 배서의 연속이 없고 위 무효인 배서이후의 어음취득자는 배서의 연속에 의하여 그 권리를 증명한 자라 할 수 없다.



서명과 날인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던 사례도 있다. 현재의 공인중개사법에 해당하는 구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 신고에 관한 법률(2009. 4. 1. 법률 제959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서는, 중개업자(현행 개업공인중개사)가 거래계약서에 "서명·날인"을 하지 아니한 경우를 영업정지사유로 정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의 중개업자는 거래계약서에 "서명"만 하였을뿐 "날인"을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제1심은 "서명·날인"을 "서명 또는 날인"으로 해석하여 처분을 취소하였으나, 항소심은 "서명 및 날인"으로 해석하여 처분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항소심인 원심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보아 "서명 및 날인"으로 해석하였다. 이후 위 법률의 "서명·날인"은 법원의 해석에 따라 "서명 및 날인"으로 개정되었다.


■ 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8두16698 판결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 신고에 관한 법률 제26조 제2항, 제25조 제4항에서 정하는 ‘서명·날인’은 서명과 날인을 모두 하여야 한다는 서명 및 날인의 의미로 해석해야 하고, 또한 같은 법 제39조 제1항 제9호는 같은 법 제26조 제2항, 제25조 제4항에 정한 거래계약서에 서명·날인의무를 위반한 경우를 업무정지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제39조 제1항 제9호에 정한 ‘서명·날인을 하지 아니한 경우’란 서명과 날인 모두를 하지 아니한 경우뿐만 아니라 서명과 날인 중 어느 한 가지를 하지 않은 경우도 포함한다.



이와 같이 법원이 서명, 기명, 날인, 무인의 개념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해석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계약서 작성 시에는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정확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서명, 기명, 날인, 무인의 정의에 대하여 법령에서 명확하게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서명(署名) : 본인 고유의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제3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씀. 또는 그런 것.

기명(記名) : 이름을 적음. ≒녹명.

날인(捺印) : 도장을 찍음. ≒경인, 날장.

무인(拇印) : 도장을 대신하여 손가락에 인주 따위를 묻혀 그 지문(指紋)을 찍은 것. =지장.


참고로, 2012. 2. 1. 제정된 본인서명사실 확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는 ""서명"이란 본인 고유의 필체로 자신의 성명을 제3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기재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이 위 조항에 근거하여 "서명"의 정의를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은 "무인"에서 사용하는 손가락을 엄지손가락으로 한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고려대한국어대사전과 다르게 정의되어 있는 부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네 가지 개념 간의 차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전적 정의에 기초하되 추가적인 논점들과 함께 서명, 기명, 날인, 무인의 법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서명(署名)


본인이 자필로 이름을 기재하여야 한다. 자서(自書) 또는 사인(sign)을 의미한다. 외국인의 경우 서명만으로 서명날인 또는 기명날인을 대체할 수 있다(외국인의 서명날인에 관한 법률).


■ 외국인의 서명날인에 관한 법률
법령의 규정에 따라 서명날인[기명날인(記名捺印)도 포함한다. 이하 같다]하여야 할 경우 또는 날인만 하여야 할 경우에 외국인은 서명만으로 이를 대신할 수 있다. 다만, 그 외국인이 서명날인 제도가 있는 국가에 속하는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2. 기명(記名)


본인이 기재할 필요도 없고, 자필로 기재할 필요도 없다. 누구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름을 기재하면 된다. 이름을 기재할 수만 있다면 서명이나 날인(姓名印 등)의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대개는 워드프로세서로 미리 이름을 기재함으로써 계약서를 인쇄할 때 부동문자(不動文字)로 기재되곤 한다. 기명만으로는 본인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단독으로 사용되기 어려우므로, 결국 계약서에는 서명, 날인, 무인이 존재하여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358조도 같은 취지에서 아래와 같이 서명, 날인, 무인이 포함된 경우 문서의 진정성립을 추정하도록 하고 있다.


■ 민사소송법
제358조(사문서의 진정의 추정) 사문서는 본인 또는 대리인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拇印)이 있는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한다.



3. 날인(捺印)


인장(指章), 즉 도장을 찍는 것이다. 손가락의 지문을 이용한 지장(指章)은 포함되지 않는다. 반드시 인감등록법에 따라 행정청에 신고된 인감(印鑑)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본인이 직접 날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작성자가 대리 또는 대행 권한을 부여받아 조립식 도장을 이용하여 날인하기도 한다.



4. 무인(拇印)


도장 대신 지문을 찍는 것이다. 엄지손가락 대신 다른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명확한 해석은 확인하지 못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무인과 지장을 같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으나, 무인이 지장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보는 듯한 판례도 있다(대법원 1962. 11. 1. 선고 62다604 판결 참조).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 "도장(圖章)을 대신해서 엄지손가락의 지문으로 찍는 인(印). 보통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찍는다."라고 정의하고 있듯 엄지손가락(拇)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형사소송법에서는 아래와 같이 "지장"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하고 있으나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염두에 두고 굳이 엄지손가락 대신 다른 손가락을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형사소송법
제59조(비공무원의 서류) 공무원 아닌 자가 작성하는 서류에는 연월일을 기재하고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야 한다. 인장이 없으면 지장으로 한다.






개인 간 계약서에서는 위의 모든 방법이 계약의 성립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회사 간 계약서에서는 계약 실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계약서 중 당사자 간 "서명날인"으로써 계약의 성립을 증명하도록 하는 양식을 발견한 적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서명날인을 위하여는 본인이 직접 이름을 적은 후 인장으로 다시 한 번 날인해야 하는데, 회사 간 체결하는 모든 일상적인 계약을 대표이사가 직접 서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서명 없는 날인만이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의 효력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주된 합의사항의 경우에는 대략적이나마 그러한 내용의 합의가 실제로 이루어졌음이 여러 가지 자료에 의하여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수적 합의사항의 경우에는 문제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인 사항을 부속합의에서 정하도록 유보하면서 그 합의의 요건을 일정한 방법을 요하는 요식행위로 정한 경우에는, 그러한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의 존부에 대하여 다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 간 일상적인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는 대표자가 직접 계약서에 서명이나 무인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기명날인으로써 계약의 성립을 증명하도록 하면 충분하다. 한편, 회사 간 양해각서(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체결하는 경우와 같이 양 당사자의 대표자가 직접 만나 서명을 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때에는 서명으로써 계약의 성립을 증명하도록 하면 된다. 이러한 두 가지 경우가 회사 간 계약서의 일반적인 체결 실무로 보이는데, 두 가지 경우를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계약서 작성 시 "서명 또는 기명날인"을 요건으로 정하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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