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의 형식은 중요할까?
계약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법해석을 위한 기초자료로서 법률행위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기능이다. 계약서의 주된 독자는 법원이다. 그렇기에 법원에게 가장 익숙한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당사자가 의도한 대로 해석되기 위한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계약서의 형식적인 측면을 하나의 건축물과 같은 예술작품으로 본다면, 지극히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형식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기능주의적 디자인이 디자인을 통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능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계약서 작성자도 계약서의 형식을 통하여 계약서의 본질적인 기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고민하여야 한다. 계약서의 형식이 계약서의 기능에 봉사할 수 있다면, 형식은 중요하다.
또한 계약서는 그 자체로서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하다. 허술하게 작성된 계약서는 마치 방치된 깨진 유리창과 같다. 허술한 계약서는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부적인 단어 하나하나까지 누구나 쉽게 첨삭할 수 있는 것이라 인식하게 한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문장들이 하나 둘 추가되는 것을 시작으로 계약 전반을 고려하지 않은 수정이 계속된다면 계약서는 결국 누더기가 될 것이고 최초의 계약서 작성자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계약서는 가능한 엄격한 형식을 통해 내적인 논리의 완결성과 엄밀성을 상징할 수 있어야 한다.
계약서의 형식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양식을 다듬는 것까지는 계약의 내용을 다루는 사람이 직접 할 일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계약서의 잘못된 양식은 계약의 내용을 오도하게 할 수 있다. 사소하게 보이는 띄어쓰기와 들여쓰기도 고상하고 고차원적인 법리만큼이나 계약서의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효율적으로 완성된 문서를 만들기 위하여 분업을 할 수는 있으나, 계약서 작성자의 최종적인 관리와 감독 없이 다른 누군가의 책임으로 전가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