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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니 Mar 21. 2024

나에게 의미 있었던 시간 돌아보기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쉽지 않다 생각되었던 혼자만의 시간,

저녁 9시에 3살, 5살 아이들을 재우고 뱀이 허물 벗듯 침실을 몰래 빠져나와 TV를 켜고 볼륨을 최대한 낮춘다. 10시부터 시작하는 ‘선덕여왕’을 보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정작 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나만의 시간’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기억된다. 이전에는 아이를 재우다 내가 먼저 잠이 든다든지 드라마고 뭐고 간에 함께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화장실을 갈 때도 자유롭지 못하며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아이들과 함께하던 그때는 알지 못했던 달콤한 시간이었다.‘선덕여왕’ 방송을 매 회 챙기던 그때 즈음 비로소, ‘함께’만 알던 내게 ‘따로’라는 단어가 스며들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어떠한 직장생활도 하지 않았다.

변명 같겠지만, 아니 변명하자면 아이들이 자라는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달스런 엄마처럼 보였을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에겐 내가 필요했을 때였고, 어머니의 직장생활로 결핍되었던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위로였으며 착한 엄마 대열에 함께 하고 있다는 만족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며 나에게 찾아온 오전시간은 여유로웠다. 누구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던 내가, 나를 위한 배움의 시간에선 내 이름 석 자로 불리었다. 외국어를 배우고, 그림책을 만들고 도서관, 문화센터에 자주 드나들었다.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길 바라서였기도 하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들에 나 역시 행복했다.


  두 달 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왔다. 묵은 짐들을 버리고 정리하고 나면 나와 남편의 개인공간이 나오겠다며 10년 전부터의 숙원사업에 김칫국을 마셔댔다. 남편은 기타 칠 수 있는 공간, 난 글 쓰고 그림 그릴 수 있는 공간. 관련된 도구와 장소가 내가 오기를 기다려주는 공간말이다. 아직까지는 읽던 책이나 물건들을 들고 부엌식탁에서 거실테이블로 이리저리 유목민처럼 옮겨 다니느라 짜증과 번거로움이 있는 상태이다. 이사 후 좀 나아지긴 했으나 최선의 공간을 위해 지금도 고심 중이다. 공간이 있어야 시간도 생겨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 멍도 때리며 사부작 거릴 수 있는 작은 작업실이 필요하다.


 공간은 아직 엉망진창이지만 시간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림 그리기에 갈증은 있으나 못 그리는 실력을 부끄러워하던 나는 이 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 글과 함께 sns에 올리는 작업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세상에는 실력 좋은 전문 작가가 많은 데다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운 적도 없는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린 그림을 남에게 보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걸 깨 보기 위해 못 그린 그림이든 맘에 안 드는 그림이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사실 내 얼굴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ㅎㅎ), 무조건 매일매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계속하고 있으니 꽤 뿌듯한 작업이다. 반복되는 과정을 정리해 보자면 매일 저녁 9시경에 필요한 종이와 도구를 들고 거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 속 저장된 오늘을 찾아보거나 주변에서 오늘의 그림과 글의 소재를 찾는다. 외출을 하고 사진을 많이 찍은 날에는 그림 주제가 일찌감치 정해지므로 순조롭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든 없든, 그림이 잘 그려지는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잠시 멈추어 그 시간과 마주해야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만약 오늘 정말 그릴 게 없고 너무 피곤해서 하기 싫더라도 해 내야 하며,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여차하면 어제를 마지막 날로 만들어버리는 오점을 남기게 되므로 하루하루 연명하며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이 시간만큼 방해받는 것들은 뒤로 미루고 최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예로 어제는 영화 <인셉션>을 보고 주인공 ‘코브’의 팽이 토템을 그렸다. 이처럼 쉽고 아주 사소한 것들 투성이이지만 ‘숙제해야 한다.’‘그림 그려야 한다.’며 시간확보를 위한 내 방백을 가족들이 듣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면 별거 아닌 시간이지만 인정해 주며 존중받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시간이 흐르고, 유년시절을 지나 중년이 된 지금, 누구의 자녀, 아내, 엄마, 친구 등등으로 지나온 매 순간들이 지금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번쩍거렸던 시간은 몇 번 없었을지 몰라도 은은한 촛불처럼 꺼지지 않고 나를 비추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좋아하게 된 문장이 있다. 이유는 누가 보면 돈 안되고 비생산적인 일들로 가득한 나에게 지금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이다.


‘아무것도 아닐 리 없다. 무엇이든 되고 있을 것이다.’ 난 이 말을 믿기 시작했다.


 가끔 브런치에 끄적끄적 글을 올리고, 인스타그램에 나의 본명이 아닌 ‘쑤니’로 그림과 글을 올리는 시간, 그걸 준비하는 시간, 계속해서 쌓이는 작업물들. 모든 것이 나름의 내가 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느껴져 그냥 좋다. 아직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곧 나만의 공간에서 이 시간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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