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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 Aug 02. 2024

맨 정신으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비싼 돈 주고 듣는 인생 스토리

나는 가끔 택시를 탄다.


물론 맨 정신으로는 타지 않는다. 조금 취기가 올라오고 기분이 좋아져서 택시에 오늘은 조금 내가 플렉스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 때, 가능하다. 그냥 취하면 탄다.


주로 술을 먹는 장소는 서울이다. 그리고 나의 거주지는 인천이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겨우 통금을 맞추기 위해 택시를 타게 되면 집까지 대략 40분에서 50분이 걸린다. 그동안 휴대폰을 할 수도 있고 에어팟을 양쪽 귀에 꽂은 채로 음악을 들어도 되지만 기사님이 먼저 말을 걸어올 때, 나는 에어팟을 가방에 넣는다.


처음에는 그저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게 된다. 날씨가 더운지 추운지, 길이 막히는지 아닌지 등등 그러다 줄곧 입을 다무는 거에 질렸던 기사님들은 하나둘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그들의 얘기를 듣고 열심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리액션을 한다.


첫 번째 기사님은 도박으로 인해 재산과 가정을 잃었다고 한다. 젊었을 적 잘 나갔을 때, 열심히 벌어서 마련한 건물 두 채와 오랜 기간 연애하여 결혼을 하게 된 와이프 모두 그가 도박으로 인해 모두 한 순간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아이는 없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몇 년 전까지 아등바등 일을 하던 와이프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하겠다며 자신의 손을 놓았다고 했다. 모든 걸 잃고 난 뒤 그는 자신까지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개인회생을 통해 빚을 갚아 나아가고 있으며, 현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택시일을 하고 있고 김포, 파주 쪽에 친누나와 함께 밥집을 도와 겸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에 한번 자신의 누나가 하는 밥집에 오라고 하셨는데,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하.


두 번째 기사님은 화가 많으신 분이었다. 정확하게는 본인이 몸 담고 있던 택시 회사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으신 분이었는데, 처음 불만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의 결론은 '택시로 돈을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였다. 택시를 빌릴 때 내야 하는 돈부터 시작해서 하루 일당처럼 내야 하는 사납금부터 시작해서 모기 오줌만큼 지원되기 때문에 결국 개인돈으로 메꿔야 하는 주유비까지. 분노에 차서 길을 잘못 들고 난폭하게 다른 차를 추월하면서도 쉬지 않고 불만을 쏟아내던 기사님에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집에 무사히 가기만을 기도했다. 


세 번째 기사님은 나의 나이를 궁금해하셨다. 나만했던 아들이 있었다고 하시면서 아들 자랑을 시작하셨다. 아들은 지방에 있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좋은 월급을 받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꾸준히 보내는 효자였다고 한다. 그러다 본인의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자마자 혼자 남을 아버지가 걱정되어 회사도 그만두고 당장 모든 걸 접고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하루종일 잡혀 있어야 하는 직장일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파트타임으로 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아버지의 끼니를 챙겼고 밖에서 집에 들어올 때 맛있는 게 보이면 꼭 사들고 들어와 아버지와 함께 먹기를 좋아하는 그저 착하기만 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은 본인의 엄마의 뒤를 이어 암으로 아버지를 떠났다. 


기사님은 자신의 아내가 떠났을 때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았던 아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보지 않았을까 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지금 항암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도 암이 생겼다는 걸 알 게 되었다고 한다. 순간 아내와 아들을 데려간 암이 자신에게도 발견되었다는 건 그냥 운명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수술을 했고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자신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기 위해 택시 기사 일을 병행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10차 항암이 끝나고 6개월 뒤에나 병원에 와도 된다는 말을 끝으로 그는 당분간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심을 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이겨냈다고. 앞자리가 겨우 5를 넘긴 그는 오늘도 역시 자신을 위해 고기를 구워 먹을 거라고 했다. 도착 위치가 다 되어서 오늘 자신의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술에 말끔하게 깬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이후로는 택시를 한참 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실 더 많은 얘기에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글로 적을 수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다음에 또 술자리가 있어서 택시를 타게 된다면, 어떤 얘기를 듣게 될지. 그리고 꼭 기억해서 글로 적을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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