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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소안 Aug 17. 2022

안녕하세요? 아소안입니다.

첫 번째 편지

봉별기님께


봉별기님! 안녕하세요? 아소안입니다. 아직도 “요”체가 어색한 저는 어쩔 수 없는 제대군인인가봅니다. 5~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로그 이웃으로 오래 서로를 지켜본 우리가 실제로 처음 만난 날, 저는 불쑥불쑥 ‘다’나‘까’체로 대화를 할 뻔 했어요. “안녕하십니까?”,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 자연인 봉별기와 자연인 아소안이 만난다고 생각했는데도, 제 무의식 안에서 우리는 ‘여군’이라는 띠로 빙빙 둘러쌓인 듯 했습니다.


먼저 교환편지를 제안해주셔서 감사해요. 봉별기님은 어릴 때부터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셨죠? 돌아보면 전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왜 그럴까 하고 시간을 거슬러 가보니, 어버이날이 있더라구요.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쓰는 날이잖아요. 그때도 지금도 저는 형식적인 거 싫어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잘 못해요. 학교에서 어버이날 편지를 쓰라고 하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부터는 카네이션만 선물하곤 했어요.


그럼에도 편지를 가장 많이 주고 받았을 때가 언제인줄 아세요? 가까운 남자친구들의 군복무 시절과, 제가 장교 후보생이었을 때 입영훈련 가서에요. 역시 편지하면 군대고 군대하면 편지 아니겠어요? 지금은 군대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까 편지도 공중전화도 지나간 병영의 추억이겠죠. 앗, 제가 베테랑 군인 앞에서 감히 라때 얘기를 꺼냈네요.


저는 6년 4개월 동안 육군 장교로 생활하고 2020년에 대위로 전역했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군인에 대해서 좋은 직업인데 왜 제대했느냐고 많이 물어봐요. 저는 씩씩한 척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역했다고 말합니다. 서른 살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마침 군에서도 선발이 되지 않아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고요. 좋게 헤어진 애인처럼, 떠올리면 애틋하다고요. 사실은 ‘자의 반’도 거짓말, ‘타의 반’도 거짓말이에요. 봉별기님, 좋게 헤어진 사람이 있으세요? 전 없어요. 그렇게 애틋한 사람이랑 어떻게 헤어지나요.


오래전 봉별기님과 블로그로 교류를 하다 제가 “우리라고 이런 글 쓰지 말라는 법 있나요?”라고 댓글을 남겼었죠. 그리고 봉별기님은 첫 번째 편지에서  저의 말에 분노를 느꼈다고 하셨어요. 사실 저도 조금은 놀랐고 어떤 분들은 그 편지를 읽으며 이게 분노까지 할 일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봉별기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아직도 현역 군인으로 복무 중인 것 아시죠? 제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군인이 되었다는 것도요. 그리고 군복무 시절에도, 전역한 지금도 군에 관한 것이라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주 떠오르는 장면은 제가 중위 때, 부대에서 일련의 사건에 휘말려 ‘살아서는 군대 밖으로 못나가겠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어느 날이에요. 아버지의 차에 타고 있는데, 갑자기 울리는 기상나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소리의 정체가 아버지 휴대폰의 벨소리라는 것을 알고 엉엉 울면서, 제발 그 소리 좀 안 들리게 해달라고, 미칠 것 같다고 소리 지르며 아버지께 화를 냈던 그 날의 기억이.


그래서 함께 글을 써보자던 제 말에 화가 났던 봉별기님이 이해가 돼요.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풀어내고, 내려놓기 위해 쓰고자 하시는 마음이 반갑지만 한편으로 아쉬워요.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군인으로 지내셨는데, 그 기간을 마무리하려는 것 같아서요. 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대한 건 아닌 것 같아요. 6년 4개월 말고 10년 했으면 어땠을까? 15년은? 20년은? 계속 상상하거든요. 저, 헤어진 거 아니고 차인 거 맞죠? 아직은 좀 쓰리고 그립고 그러네요.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이런건 아니고요. 흐흐.


‘아소안’이라는 이름의 뜻을 많이들 궁금해하시는데 멋지지 않아서 머쓱해요. ‘아름다운 소리’에 관한 뜻이고, 또 제 본명에는 없는 ‘ㅇ’을 군데군데 넣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아소안님’ 부를 때도 좋지만 ‘소안님’ 이라고 할 때도 제 이름 같아서 좋아요.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 외롭고 막막한 마음을 어디라도 털어놓고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그때 즉흥적으로 만든 닉네임을 아직까지도 이렇게 사용하고 있네요.


앞에서 편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게 마음에 걸려요. 그런데 봉별기님, 저는 일기 쓰는 걸 무지 좋아한답니다. 어떻게 보면 일기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잖아요? 이렇게 강력한 공통점을 가진, 하지만 많이 다른 사람인 저와 봉별기님. 우리 때로 편지처럼, 때로는 일기처럼 얘기 나눠요.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그 커다란 공통점을 만든, 봉별기님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그럼, 다가오는 한 주도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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