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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Apr 25. 2024

테이핑 테이프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통증이 오네요.

내일 축구 대회가 있는데 햄스트링이 자주 와요.

발목이 삐었다는데 걸을 때마다 좀 아파요.


제조업이기도 하고, 평균연령이 40대 초반이다 보니 작업환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으로 인해 어깨, 손목, 허리, 팔꿈치 관절마다 다양한 양상의 통증을 호소하며 건강관리실을 방문하는 직원들을 자주 보게 된다. 심각한 질환이면 병원을 방문하시라고 권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웬만하면 여기서 좀 어떻게 해보길 바라는 직원들의 귀차니즘과 근무 중 직원들이 신체적으로 느끼는 불편감을 최소화시키는 게 산업간호사의 주 업무 중 하나이다 보니 나는 그럴 때마다 테이핑요법을 자주 적용한다.


접착성이 있는 테이프나 붕대 등을 사용하여 관절과 근육의 해부학 및 운동역학적 특성, 각 부위의 크기와 형태 등을 고려하여 감아주는 보조적 요법인 테이핑은 실제로 많은 운동선수들이 축구, 농구, 야구 등 다양한 구기 활동 시에 관절을 보호해 주고 근육 손상 또는 인대 파열로부터 보호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상 부위 재발방지, 재활치료 또는 훈련 시 고정, 응급처치등을 위한 목적으로로 널리 테이핑은 사용되어지고 있다. 


오늘 방문한 직원은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직원이다. 건강관리실을 들어서면서 부터 오른쪽 팔꿈치를 왼손으로 문질문질하며 미간이 일그러진 그를 보고 나는 말없이 테이핑테이프와 가위를 집어 들었다. 테이핑 테이프를 통증을 호소하는 근육의 모양대로 길게 자른다. 팔꿈치나 무릎, 고관절 부위 통증이 있을 때는 관절을 감싸듯 붙이기 위해 감싸는 부위만큼은 테이프를 세로로 자른다. 


무릎이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무릎이 조용하니까 이제 팔꿈치가 아파서 들어 올리지를 못하겠어요. 이 놈에 몸뚱이는 하루가 조용한 날이 없어요.


통증으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직원은 통증 보다도 통증을 느끼고 있는 몸뚱이가 더 문제라는 듯 테이핑 테이프를 쓱쓱 자르고 있는 나에게 팔꿈치를 들어 올리며 익숙한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프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직업은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원이겠지. 그럼 의사가 그 말을 가장 많이 들을까? 간호사가 많이 들을까? 나는 단연 간호사가 많이 듣는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 주된 원인을 찾고, 처방하고 수술하는 게 주라면 간호사는 그 통증이 완화될 때까지 어디가 아프냐? 얼마나 아프냐? 좀 나아졌냐?를 물으며 통증을 관리하는 업무가 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주위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걸어가다가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심지어 통화를 하던 중에도 내가 보이면 나를 불러 세우고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 나는 병원에 근무하는 임상간호사가 아니고, 내 주위 사람들은 입원환자가 아니라 직장동료, 동네사람, 가족, 친구인데도 말이다. 

내 얼굴에 본인의 아픈 부위가 그려지거나, 비가 오면 우산이 생각나듯 아픔을 기억해내게 하는 키워드처럼 나를 보면 불쑥 아픈 부위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이쯤 되면, 간호사는 아프다는 말을 들으려고 태어난 사람 같기도 하다. 뭔가... 운명이나 숙명 같은 그런 끈끈한 연결고리?

사람들을 도와주고 아픔을 나누는 건 괭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실수해서 차트로 얻어맞고, 구석진 곳에서 폭언폭탄을 들어도 원론적으로 깔린 바른 직업에 대한 믿음으로 지금껏 버텨 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내 손가락에서 피가 날 때면 테이프를 입으로 물고 돌려가며 붙이고, 바쁠 땐 처방된 엉덩이 주사약을 내가 내 엉덩이에 찔러 넣을 때면 그럼 나는? 나 아플 때는? 하는 생각에 좀 공허해 지는건 어쩔 수 없다.


고통은 생명유지에 엄청 중요한 기능이거든요. 고통을 못 느끼면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해요. 우리 몸에서 이상이 생겼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니까. 그리고 무릎은 이제 안 아프니까 팔이랑 둘 다 아픈 것보다는 낫지 않아요?


이야기를 해놓고 보니 순간 아파 죽겠다는 직원에게 이게 무슨 개풀띁어 먹는 소린가? 싶다. 이걸 위로라고....

다시, 다시, 환자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 준다. 아... 정말 많이 아프셨겠네요. 그래서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그다음에, 치료에 대한 설명을... 속으로 식은땀이 찔끔 나려던 찰나 직원이 반응을 보였다.


그러네요. 둘 다 아픈 것보단 낫네요. 


그래도 19년 쌓아온 라포가 효과를 발휘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말은 글보다 어렵다. 위로가 비수가 되고, 칭찬이 비꼼이 되기도 하며, 때론 폭언이 관심이 되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글은 쉽던가? 매해 4~5건씩 접수해 대던 공모전도 이젠 시들해졌다. 그 우편값으로 그냥 커피나 한잔 사 먹으면서 내 마음을 달래할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잘린 테이프는 직원의 팔꿈치를 한 바퀴 감고 손목까지 길게 요골근을 따라 느슨하게 한번. 손목과 팔꿈치 사이를 가로지르게 한번. 부착하고 스프레이 파스로 통증이 많은 부위는 한번 더 신경 써 뿌린다.


다됐습니다. 테이핑 부위가 가렵거나. 불편하면 바로 제거하시면 됩니다. 3일 이상 부착하면 안 되고요.


테이핑 요법은 생각보다 많은 원리가 적용된다. 테이핑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 피부가 테이프 모양대로 굴곡이 생겼을 때 그 사이로 혈액과 림프액의 순환이 증가되어서 근육의 운동기능이 되살아난다거나, 피부에 붙여진 테이프가 물리적 자극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면서 통증을 전달하는 섬유보다 먼저 척수에 도달하여 통증의 전달을 억제하여 통증을 덜 느끼기 한다거나, 근육 위에 테이핑을 부착해 근육이 보강된 듯 근력을 더 증진시킬 수 있다는 등등.. 아직은 여러 가설이지만, 확실한 것은 테이핑테이프가 적용되면 근육이 자신의 기능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착 붙어서 원래의 나였다는 듯.  넌 잘했어. 내가 좀 도와줄게. 하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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