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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Oct 31. 2023

파리에 가면 물랑루주도 있고

#파리#물랑루주#영화#독일생활

학창 시절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고..."게임을 기억하시는지요?


바로 앞사람이 언급한 장소를 먼저 주욱 나열하고, 추가로 이어서 자신이 말할 장소를 언급해야 하기 때문에 순발력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좋아야 하는 게임이지요.

물론 그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게임을 재미있게 할 수 있겠지요.


삼. 육. 구. 놀이 박자를 아신다면... 그 박자와 몸동작을 같이 하시면 되지요.(기억이 맞으려나 모르겠어요)

둘이던 셋이던 참여하는 사람들이 순번으로 돌아가면서 하면 되지요.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장소가 빨리 소진되면서 긴장감이 더해지고 엉뚱한 장소를 말하기도 하지요. 그 진위를 따지기 위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소동 자체가 큰 재미와 폭소로 이어지고는 하지요.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지루할 때 동승자 간에 다음 휴게소에서 간식내기 시합으로도 아주 좋지요.

단, 운전자는 게임에 끼면 안 돼요.

안전 운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자... 그럼... 파리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게임을 해 볼까요.


준비되셨나요?


요.. 이.. 땅 (일본말이기는 하지만... 예전 분위기상... 그냥 사용할게요)


1.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2.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3.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4.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루브르도 있고...(박자상 박물관, 미술관은 생략...)

5.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루브르도 있고 퐁피두도 있고...

6.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루브르도 있고 퐁피두도 있고 오르세도 있고...

7.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루브르도 있고 퐁피두도 있고 오르세도 있고 노트르담도 있고...

8.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루브르도 있고 퐁피두도 있고 오르세도 있고 노트르담도 있고 몽마르트르도 있고...

9.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루브르도 있고 퐁피두도 있고 오르세도 있고 노트르담도 있고 몽마르트도 있고 오랑주리도 있고...

10. 파리에 가면 에펠탑도 있고 개선문도 있고 샹젤리제도 있고 루브르도 있고 퐁피두도 있고 오르세도 있고 노트르담도 있고 몽마르트도 있고 오랑주리도 있고 물랑루주도 있고...


짜증 나셨지요?

이쯤 되면 기억의 순서가 맞는지 틀리는지... 아수라장이 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박자감을 놓치기 일쑤이지요. 이 단계에서 틀리지 않고 더 갈 수 있다면 대단한 순발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어요.

대 부분 서너 단계에서 틀리고 말지요.

한바탕 박장대소와 함께 여행의 즐거움이 더해지고는 하지요.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단풍놀이 기차 (비둘기호라고 제일 아래급 기차였지요. 똥차라고도 불렀던 것 같아요) 안에서 시끌벅적하게 이런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민폐와 소음이 틀림없겠지만... 그때는 왠지 모르게 어느 정도 용납이 된 듯한 분위기였지요)




한적한 가을날 아내와 파리를 다녀오기로 했지요.

기차로 하이델베르크 출발해서 칼스루(Karlsruhe)에서 TGV로 갈아타고 파리로 가는데 세 시간 정도면 충분했지요.


기차 안에서 아내는 파리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혼자 분주하게 공부하고 있었지요.


그 사이 기차 창밖 너머로 혼자 시선을 흘리면서 마음속으로  이 게임을 하고 있었지요.


'파리에 가면....'


파리에 가면 볼거리가 사방에 널려 있지요.

파리라는 도시가 연상시키는 일반적인 장소의 아름다움과 숨겨진 골목길을 반추하며...

'............'

시원하던 창밖 풍경이 점점 지루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할 무렵....

여객실 입구로 막 들어서는 여성 승객 한분과 눈이 마주쳤지요.

분위기가 어디서 본 듯한... 아주 익숙했지요.


익숙했다기보다는... 배우 니콜 키드먼 분위기와 아주 많이 흡사했어요.(진짜 니콜은 아니었어요)

찰나(?)의 마주침에서... 아주 오래전... 영화 "물랑루주"가 연상되었지요.


파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파리에 가면 게임을 하던 중.... 니콜 키드먼 분위기의 여인... 영화 물랑루주로 이어지는 연상회로 작동은 아주 자연스러웠지요.


20년 전 뮤지컬 영화...


여전히  마음속에 최고의 영화로 남아있는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물랑루주, 파리에서 가봐야 할 곳 리스트에 자연스럽게 추가되었지요.


우리  목적지는 몽마르트 언덕 위 사크레퀴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이었지요.

어차피 가는 길에 있으니 큰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요.

몽마르트언덕 가는 길 모퉁이에 물랑루주(빨간 풍차) 모습이 보인다.
입구가 온통 빨간색으로 단장을 했고 극장 간판이 무희들 모습으로 화려하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영화 주제는 애틋한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부와 질투가 배경이지요.

주인공 크리스티안(이완 맥그리거)은 글을 쓰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예술가의 도시인 파리로 온 가난한 영국인 시인이자 작가이지요. 얼떨결에 무대에 올릴 연극 주인공을 찾다가 물랑루주 카바레의 간판 가수인 사틴(니콜 키드먼)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사틴은 세속적이고 아름다운 창부이지요. 사랑보다는 돈이 최고이며 사는데 돈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이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정한 배우가 되기를 꿈꾸기도 하지요. 욕망을 향해 달리는 마음과 달리 사틴의 몸은 불행하게도 아무도 모르게 결핵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지요.


사틴은 자신의 착각으로 크리스티안이 부자 공작이라고 믿었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부자 크리스티안이 카바레의 새로운 쇼에 투자하고... 그녀를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은밀하게(?) 접근하지요.  


사틴이 그와 거래를 위해 은밀히 크리스티안을 만날 때,  크리스티안의 사랑의 고백인 노래 "Your Song"에 반하게 되지요. 크리스티안이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시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지만... 순수한 영혼의 예술인인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가난하고 순수한 영혼의 시인과 세속적인 창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 까요.


둘 사이를 눈치챈 공작은 무대의 성공을 위해 크리스티안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지요. 사틴은 크리스티안을 살리기 위해 사틴은 이별을 통보하고 크리스티안을 배신한 체(척) 마지막 무대에 오르지요. 사틴은 결핵으로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공작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에 크리스티안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몰랐지요.


이별에 화가 난 크리스티안은 공연 무대에 난입해(?) "Come what may"을 노래하면서 무대에 올라 두 사람의 사랑을 재확인하지요. 난입마저도 공연의 일부인 것처럼... 성공적으로 공연이 끝나지요. 질투의 화신인 공작은 크리스티안을 죽이려고 권총을 발사하려 하지만 번번이 무대광대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지요.


결국... 우리의 아름다운 여주인공 사틴은 마지막 공연에서 결핵으로 크리스티안 품 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지요. 마지막 유언은 둘의 사랑이야기를 글로 써달라는 것이었지요.  크리스티앙은 그녀의  유언대로 그들의 사랑을 써 내려가기 위해 타자기 앞에 앉게 되지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노래(뮤지컬)로 풀어나가는 감동과 슬픔, 그리고 약간의 코믹으로 가슴 먹먹한 좋은 영화이지요.

감동과 슬픔을 주었던 물랑루주 원 장소에 와 보니 그 감회가 새로웠지요.

감회와는 달리 주변이 그리 건전해 보이지도 않았지요. 아주 性스러운 가게 간판이 대놓고 많이 보여서 약간 당황하기는 했네요. 오래전 무희들이나 창부들의 생활이 어떠했을까...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도 물랑루주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많이 그렸다고 하지요. 신체장애가 있던 로트렉은 물랑루주와 다른 밤업소에 가서 매일 밤 스케치를 했다고 하지요. 매일 매춘굴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결국 매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서른여섯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해요. 짧은 나이에 오천여 점의 작품을 남겨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요.


이작은 거인 덕분에 이름 없이 사그라져 있을 있는 잔 아브릴과 라 굴뤼같은 물랭루주 무희들의 이름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 뮤지컬 영화가 유명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대중가요를 대본에 채택했다는 것이지요.

새로 뮤지컬을 위한 노래를 작곡하지 않고 대중가요를 사용하여 20세기에 막 접어든 파리의 물랑루주를 배경으로 하여 완벽하게 적용했다고 할 수 있어요.


영화에 사용된 노래 중에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노래는 크리스티안 사랑 고백에 사용된 "Your song"이지요.

원작은 엘튼 존(Elton John)의 노래이고요.


이영화의 주인공인 니콜과 이완의 노래 실력이 프로 가수 뺨 칠 정도로 대단하지요.

처음에는 "이 것 분명히 더빙이다."라고 확신했을 정도였지요.

역시 실력 있는 셀럽은 팔방미인이 틀림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완처럼 "Your song"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부를 수 있다면 사랑고백의 성공 확률은 백 퍼센트이겠지요.


연습해서 아내 앞에서 한번 불러 볼까 생각을 잠시(아주 잠시) 해 봤네요. (닭살 돋아서 역시 안 되겠어요...)


이완 맥그리거가 부르는 your song
엘튼 존의 원곡 your song


"How wondeful life is, now you are in the world."


이 말을 해 주고 싶은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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