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심 2. 오렌지
젊은 시절 아빠는
아침마다 베란다에서 역기를 들고 운동을 하곤 했습니다.
매일 아침 아빠방에는 신문이 펼쳐져 있었고,
매일 저녁 우리집 티브이에는 9시 뉴스가 틀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어쩌다 엄마랑 오빠와 함께 예능을 보며 웃고있으면
진짜 재밌어서 그렇게 웃는거냐고 진심으로 물어보는,
그런 아주 진지하고 고리타분한 캐릭터가 바로 우리 아빠입니다.
단단했던 아빠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그 할아버지는 지금도 신문과 뉴스를 봅니다.
이제는 심지어 CNN을 보십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영어공부도 어느새 30년을 꾸준히 하고계시죠.
정말 재미없는 캐릭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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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너무 마시써 ”
“ 귤 너무 마시써 ”
“ 귤이 아니고 오렌지 ~”
며칠 전 간 과일가게에서 6살 아들의 말 한마디에
덥석 오렌지 한봉지를 사버렸습니다.
집에 와서 하나둘 까먹는데 어느새 내가 다 먹어버렸네요.
사실 오렌지는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일이거든요.
오렌지를 처음 먹던 그 날,
오늘 과일가게에서 시식용 오렌지를 계속 집어먹던 아들처럼
나 역시 앉은 자리에서 오렌지 몇개를 순삭했던 것이 시작이었을 겁니다.
입도 짧고 삐쩍 말랐던 딸이 맛있게 먹는 것이 보기가 좋으셨던지
아빠는 다음날도 오렌지를 사오셨습니다.
그 다음주에도,
또 한번 또,
그 다음달에도
아주 꾸준히도 말이지요.
퇴근길에 아빠손에 검은 봉지 하나가 들려있으면 오면 보지도 않고 알았지요.
우리 딸 먹으라고 사온 오렌지라는 것을요.
맛있게 먹으라든가하는 붙임말보단
빙그레 웃음만 지으며 식탁에 올려놓으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실 아빠와 오렌지는 별로 안어울리는 조합입니다.
진지한 아빠와 상큼한 오렌지의 조화라니.
무채색 종이위에 실수로 강렬한 주황색을 떨어뜨린 느낌이랄까요.
그러고보면 아빠는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고,
다정하기보단 엄격한데 다정한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열심히 살아야겟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꾸준한 아빠의 인생을 보고있노라면 말이죠.
행동으로 보여준 아빠의 사랑은 오랜세월 쌓이니 더 티가 납니다.
이렇게 체현된 사랑은 나름의 무게감이 상당합니다.
아빠처럼 나도 내 나름의 깜냥으로 아이들을 키워나갑니다.
오늘은 한손에는 키위를,
다른 한 손에는 귤 한봉지를 사서 집에왔습니다.
우리 딸은 귤이 제일 맛있다하고
과일 잘 안먹던 아들이 요즘 키위에 꽂혔거든요.
너무 기쁩니다.
아이들 생각하며 과일을 산다는 거.
이렇게 재밌는 쇼핑이었군요.
아빠도 그 시절
분명히 행복했겟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