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찾아오는
매일아침 눈을 뜨면 현관문을 열고 두툼한 회색 종이 뭉터기를 들고 들어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해지고, 혼자만 뒤쳐지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을 이 종이 뭉터기가 많이 해소해 주고 있어요. 한 손에 들렸던 뭉터기를 펼치면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빽빽합니다. 어떤 날은 큰 글자들만 골라 겨우 읽고, 식탁에 그대로 방치하기도 하고요. 어떤 날은 일일이 넘겨가며 정독하고, 잠이 덜 깬 채로 밥을 떠먹는 아이에게 침 튀기며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래도 그 종이 뭉터기를 들고 들어오는 건 2년째 매일 하니까 꾸준히 한다고 해도 되겠지요?
눈치채셨겠지만, 칙칙한 색깔의 그 종이 뭉터기는 종이 신문입니다. 처음엔 어린이신문이 목적이었어요. 책육아를 하면서 소설만 주야장천 읽는 아이가 비문학도 골고루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여기저기 (싸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다가 어른신문을 구독하면 어린이 신문을 껴주겠다는 말에 혹해 바로 결재를 했더랬죠. 심지어 6개월은 공짜로 넣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그렇게 조선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아이보다 제가 신문을 재밌게 읽기 시작했어요. 기껏 챙겨본다는 인터넷 기사는 아이에게 들려주기 싫은 끔찍한 사건사고나 연예기사가 대부분이었죠. 종이신문으로는 헤드라인만 훑어도 사회, 경제, 정치, 국제 이슈를 골고루 알게 되니 좋았습니다. 기사 속 글과 자료를 보다 보면 새삼 기자님들의 능력치를 존경하게 되는 부분도 있답니다.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인데, 놀라운 퀄리티의 그림과 도표, 글 한편이 뚝딱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제가 깜빡하고, 신문을 들여놓지 않은 날엔 아이가 챙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신문을 찾는 습관 하나는 참 잘 만들어준 것 같아 뿌듯해요. 챙기기만 하고, 제대로 보지 않는 날도 물론 많지만요.
엄마 엄마! 우리나라 동해에 있던 오징어가 헤엄쳐서 북극까지 갔대!
가끔 이렇게 놀라운 얘기를 아이를 통해 듣는 아침도 좋아요. 주로 동물이 나오거나 신기한 과학기사를 저에게 알려줍니다.
"어머, 정말? 오징어 참 대단하다!"
영혼이 담긴 저의 리액션에 아이는 더 신이 나서 왜 오징어가 그렇게 멀리 갈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해 줍니다. 수온이 높아져 오징어가 더 이상 우리나라 동해에서는 살 수가 없었던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동안 동물들은 제 살길을 찾아가고 있구나. 저도 아이도 오징어에게 미안하고, 기특한 마음을 가져 봅니다. 아이가 집을 나설 때쯤 조선일보에도 실린 오징어 기사를 보고 이번엔 제가 아이를 또 부릅니다.
"여기 오징어 기사가 또 나왔어!"
오징어가 안 잡혀 거의 수입해 온다는 기사였지요.
와, 얘네는 원래 국산이었을 텐데
아마 급식 반찬으로 오징어가 나오면 이 오징어는 어디서 잡힌 걸지. 혹시 우리나라에서 멀리 헤엄쳐간 아이가 아닐지 생각해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꽤 진지하게 공부도 했었어요. 작년엔 신문활용교육인 NIE자격증을 땄습니다. 나중에 도서관이나 학교 방과 후 선생님이 돼보고 싶은 맘이었어요. 나름대로 신문을 정리해 인스타그램에도 올렸었고요. 어쩌다 춤과 글쓰기에 더 빠져서 작년에 한참 열심이던 신문을 잠시 잊고 지냈네요. 제가 이렇습니다. 정신 차려보면 늘 다른 걸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도 신문이든 책이든 글이든 종이 뭉터기와는 꾸준히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나는 창작의 땅에서 삽질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모든 것은 나중에 땅굴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내가 판 굴이 다채로워진다.
이연 작가님의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라는 책 속 문장이에요. 신문 하나 보는 거 가지고 이럴 일이야 싶을 수 있겠지만, 저는 좀 진지했답니다. 이 좋은 소스를 어떻게든 활용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이연 작가님의 말대로 언젠가 아이들과 유행하는 릴스도 찍고, 신문도 보는 유쾌한 수업을 해 볼 수도 있겠고, 브런치에는 '신문'을 소재로 글을 써 볼 수도 있겠어요. 혹은 그냥 쭈욱 보기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한 신문 보는 할머니도 멋지니까요. 그저 이 종이 뭉터기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되어 사라지지 않기를, 매 월 두 신문사에 2만 원씩 납부할 만큼의 여유를 잃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 깨알 같은 글씨의 신문을 꾸준히 보려면 벌써 침침한 눈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