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별이야기
S가 내게 낚싯줄 던졌다. 날카로운 낚싯줄이 내 등에 걸렸고 나는 그 낚싯줄을 빼달라고 울며 애원했다.
너무 아팠다. 그래서 낚싯바늘을 뜯어내려고 마구 뛰었다. 아무리 뛰어도 낚싯바늘은 뜯어지지않고 팽팽하게 상처를 더 당겨서 날 아프게할 뿐이었다.
계속 뛰어서 너무 힘들고 상처는 너무 아팠다. 죽을 것 같은데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더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 일어났다. 꿈이었다. 다행히... 다행이 아닌가. 정신을 차려보니 평소 거의 나지도 않는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었다. 건강검진만 하면 심전도 유소견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서맥이 심한데도 심장 박동소리가 내 귀에까지 크게 들릴 정도로 심장이 벌렁거렸다. 심장이 물리적으로 아픈 것 같아서 남은 울음을 다 마치고서야 간신히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꿈이야 워낙 많이 꾸지만 이정도로 고통스러운 꿈은 오랜만이었다. 일년 전에 헤어진 전남친이 아직도 꿈에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다니 정말 끈질긴 망령이다. 아니 사실은 내 끈질긴 미련이 맞는 말이지.
전날 꾼 꿈탓인지, 잠을 설쳐서인지 금요일인데도 하루종일 피곤하고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심지어 팀장님은 휴가를 가셔서 안 그래도 조용한 VIP라운지가 더 적막했다. 평소 말씀이 너무 많으셔서 리액션하면서 들어주는 부하직원 노릇이 좀 고되었었는데 그마저 살짝 그리웠다.
세시 반 정도 되자 그래도 금요일이라고, 마감하고 집에 갈 생각에 잔잔한 기대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 중년 남성 고객이 서류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보통 이시간에 서류뭉치를 들고 온거면... 오래 걸리는 업무다. 아니나 다를까 고객은 여러가지 업무처리를 요청했고, 이 근방에서는 꽤나 큰 법인 대표라 성격도 적당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하필 금요일 마감에 피곤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보통 대표들은 얘기를 들어주기만 잘해도 호의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수월한 업무처리를 위해 ‘정말요? 그러시구나~ 네네 맞아요’ 3종 리액션으로 고객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있었다.
이제 내가 고객에게 뭔가 관심을 표현할 차례. 사업자 등록증에 있는 업종을 보니 제조업이기에 ‘어떤 제조업인가요?’ 라고 물었다. 고객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은행은 여기만 이용하는데 몇 년째 거래하는 중인지까지 줄줄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것만 들어주면 업무도 거의 끝이다! 조금만 참자라고 생각하던 찰나, 고객이 엘지에서 일하다가 나와서 제조업체를 차리게 된 일화를 얘기하는데 그놈의 ‘엘지’가 내 귀를 잡아챘다. 보통 아는체하는 것을 극도로 피하는 편인데, 나도 모르게 ‘엘지 출신 제조업체 법인 대표님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라며 뭔가 아는체를 해버렸다. 이게 그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할줄은 몰랐다.
고객은 화색을 띄며 아는 업체 있냐고 물었다. 내가 아는 엘지출신 제조업체 법인 대표님은 전남친인 S의 아버지뿐인데... 그래서 S아버지 포함 여러명이 같이 설립한 회사였던 ㅇㅇ스타를 알고있다고 대답했다. ‘ㅇㅇ스타? 거기를 어떻게 알아요? 거기를 아실 나이가 아닌데..?’라고 고객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친구 아버지가 거기서 일하셨다고 대답하고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웬걸, 이 고객 ㅇㅇ스타 창립멤버들과 절친이란다. 고객은 계속해서 친구 이름이 뭐냐며 강씨? 김씨? 온갖 성씨를 대며 내게 누굴 아는지 물었다.
젠장...환장할 노릇이었다. 꿈자리도 사나워서 피곤해 죽겠는데 오늘 처음보는 고객이랑 전남친 아버지 얘기나 하고 있어야한다니 진짜 고달팠다.
근데 갑자기 고객이 전남친 아버지 이름을 딱 대면서 혹시 ㅇ영ㅇ형? 맞아요? 이러는게 아닌가. 너무 놀랐지만 침착하게 ‘친구 아버지 이름까지는 모르겠어요~ ’하며 넘기려고 했다. 흔한 성씨도 아닌데 맞지 않냐는 고객의 말에 이젠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 들어, 그 성씨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객이 소리쳤다.
’ㅇㅇ형 아들!!지난달에 결혼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