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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나 Dec 11. 2024

오자의 발견

오자는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나.

“으악~!!”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고 쓰기엔 애매한, 마음속으로 지른 비명이 온몸을 구석구석 뒤흔들었다. 확실히 ‘헉!’ 보다는 센 ‘악~!’이었으니, 대체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인쇄소에 단행본의 인쇄 자료를 넘기기 전 ‘최최최최최종.pdf’ 파일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무려 삼백 페이지짜리 판타지 동화였다. 소심쟁이에다 자칭 강박증 환자인 나는 혹시라도 오탈자가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어제부터 눈을 부릅뜨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한다고 티가 나지도 않는 막판 확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역시, 별문제 없군.’


1쪽부터 269쪽까지 눈이 빠지게 살펴보면서 적잖이 안심을 하고 있는데, 270쪽에서 가히 눈을 의심케 하는 오자가 발견됐다. 그 오자는 아래의 문장 한복판에 있었다.     


‘비어드 교수를 편지를 읽은 적 있잖아.’     


위 문장의 오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바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원고를 원서 대조 및 윤문 작업까지 포함해 공식적으로 다섯 번째 읽는 중이었다. 비공식적으로 두어 번 더 봤을 거고. 게다가 책을 번역한 역자와 두 분 독서지도안 제작자의 예리한 눈도 한 번 이상 거쳐 갔을 터였다. 그런데 이런 실수가 나온다고?     


같은 원고를 여러 번 보다 보면, 그리고 많은 글자를 보다 보면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린다고 해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읽다 보면 눈이 몽롱해지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잘못된 글자도 눈으로 읽으면서 ‘고쳐’ 읽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 명 이상의 편집자가 교차 교정을 해도 그럴 때가 있고, 흔치는 않지만 여러 명의 편집자가 돌아가며 교정을 보는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      


저 문장의 오자는 처음부터 오자였을 수도 있고, 교정 및 수정을 하면서 나중에 일어난 실수일 수도 있다. 실수의 주체는 오자를 못 본 편집자이기도 하고, 글자 수정을 잘못한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종 책임자는 편집자이기 때문에 (슬프게도) 변명의 여지는 없는 편이다. (그럼 월급을 더 주든지.)    


편집자답게 (강박적으로 눈깔에 불을 켜고) 언제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난 자료를 샅샅이 뒤져 본다. 4교에도 저대로이고, 3교에도, 2교에도... 저대로라니! 음... 무려 1교에서 내가 글자를 저렇게 잘못 수정했던 것이로다! 쭈굴~. (아주 오래간만에 일어난) 이번 실수는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오자와 교정 때마다 몽롱해진 눈깔의 콜라보였던 것! 앞으로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자는 메아리 같은 반성은 필수로다.


그나마 인쇄 넘기기 전에 발견해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만약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으스스한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겠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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