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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지 Aug 21. 2022

멋진 어른의 화해

선생님의 장래희망 = 부정적인 감정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


 교실에서는 하루 종일 싸움이 일어난다. 성격이 다른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비슷한 문제로 으르렁 거리고, 가깝고 친한 아이들도 장난을 치다가 별안간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선생님 누구랑 누구랑 싸워요! 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서 중재를 해주다 보면 어김없이 똑같은 대화가 반복된다. 씩씩거리는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자기가 한 건 과감히 생략하고 당한 일들만 줄줄이 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다. 절대로 너를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게. 약속해. 조금 가라앉히고 천천히 대화를 해보자.


 서로의 말을 막거나 끼어들지 못하게 하고 돌아가며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한다. 서로가 말하는 내용을 귀 기울여 들었다면, 이번에는 서로의 말에서 인정하는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물어본다. 차근차근 상황 파악이 되고 나면 내가 판사가 되어 판단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사과하고 싶은 것과 사과받고 싶은 것을 이야기한다.


 이 단계를 거치고 나서도 앙금이 남아있으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 역지사지를 아무리 해보려 해도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예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서로 다른 관점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면 대부분 서로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하며 잘 마무리가 된다.


 물론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둘 다 잘못했네! 서로 사과하자! 잘했어 자 악수! 하면 조금 더 쉽게 끝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싸우고 잘 화해하는 과정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 걸리더라도 이 과정에 꽤 많은 정성을 쏟는 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면 나도 이 나이 먹고도 아직 누군가랑 으르렁대곤 하는데, 아이들이 매일 싸운다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가끔은 마음 놓고 싸우는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한다. 나도 누군가랑 싸울 때 누가 이렇게 깔끔하게 중재해주면 좋겠다. 그럼 좀 더 멋지게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되면서 멋지게 화해하는 법을 알게 되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도저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마치 우리 반 애들처럼 내가 한 행동들은 깔끔히 생략되고 당한 일들만 머릿속에 줄줄이 떠오른다. 머리로는 알지. 나와는 다른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듣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하지만 기분이 상한 어른은 그게 도무지 내키지가 않는다.


 최악은 아예 싸우지도 않고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 단점을 지적하는 일은 항상 불편하고, 누군가의 단점을 마주했을 때에도 그걸 굳이 지적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은 피곤하기 짝이 없으니까. '저런 사람이구나' 하는 이해보다,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하는 포기가 편하다. 반 전체가 사이좋게 지내던 그 시절과 다르게,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어쩌면 어른의 비겁함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클 지도.


멋진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과연 나는 내가 가르치는 것들을 잘 해내고 있나?


 사실 기분이 좋은 날이나 나와 잘 맞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멋진 어른이 되는 게 어렵지 않다.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베풀게 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행동할 수 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니 좋은 모습만 보여주게 된다. 감사와 사과의 말은 쉽고 빠르게 전해지고 모든 장면에는 늘 웃음이 있다.


 하지만 내가 상태가 좋지 않거나, 마찰이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상대방의 기분까지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분노나 실망감은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필요성까지 흐릿하게 만든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 기분을 삼켜버리고, 말과 행동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심장에서 짜증과 버무려진 채 그대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밤이 되면 이불을 뻥뻥 차는 거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되고 나면 내 언행이 그렇게 부끄럽다. 아 나 진짜 별로였어. 이렇게 말할 걸. 좀 가라앉히고 여유롭고 멋지게 대처할 수는 없었을까. 드라마에서 사이다를  내 속에 들이부어주던 멋진 언니를 상상하며, 그리고 현실 속의 모지리 같던 나를 떠올리며, 천장에 닿을 듯 또 이불을 걷어찬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더 멋진 화해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어제 죽일 듯이 싸우던 두 친구가 오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앉아서 신나게 할리갈리를 하고 있는 저 모습을 보면, 화해는 확실히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것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상하게 단순한 것들이 점점 어려워진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사과를 하면 받아주고, 복잡한 생각이나 앞뒤 다른 가식 없이 솔직하게 다투고 화해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한참 생각하고 고민한 게 무색할 만큼, 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부정적인 감정에 다시 삼켜져 버리고 말겠지. 아- 진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아.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가장 높은 산은 이거 아닐까? 얘들아, 아무래도 선생님은 아직 멋진 어른이 되려면 한참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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