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 나의 고향은 안동. ‘안동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안동을 나의 고향으로 선정했던 것은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여러 번 가봐서였다. 아는 분이 몇 분 살고 계셔서 숙박비를 줄일 수 있었고 그 김에 5~6번은 방문했었다. 갈 때마다 지인들의 소개로 자연스레 안동 구석구석을 누빌 수 있었고 그 시간과 공간이 쌓여가니 어느새 내 마음에 안동에 대한 애정이 움트게 되었다. 안동을 왕래하며 보석 같은 공간을 몇 곳 알게 되었는데,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보니 일상을 살아내며 보관해놓은 곳이 아주 멋진 자산이 되었다.
나의 고향, 안동을 더 알아보려는 첫 마음은 설렘이었다. 개인적 연결이 전혀 없는 곳에 마치 항구에 닻을 내리듯 그렇게 나의 애정과 관심의 닻을 내릴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마음속 (가상의) 안동 지역 입구에 걸어놓을 표지판 문구도 생각했는데, ‘이번 학기 저의 관심의 배(ship)는 안동에 머무를 예정입니다만, 다른 지역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말이다 :)
이후 작업의 진행은 비어있는 안동 지역에 나만의 하트(네이버 지도에 가고 싶은 곳 혹은 기억하고 싶은 장소를 하트로 표시해둘 수 있음)를 조금씩 채워나가는 과정이었다. 기존의 알고 있었던 장소를 중심으로 응원의 연락을 드렸는데, 모두가 관심과 응원 감사하다며 각 장소에 수면 아래의 이야기들을 풍성히 들려주셨다. 들은 이야기를 소중히 잘 간직한 후, 그분들에게 기대어 안동 지역 내에 소소하나 의미 있는 다른 공간과 모임에 연결연결되어 닿았다. 마치 땅속에 굴을 파가는 두더지와 토끼 같은 마음으로, 최대한 넓고 깊게 안동 지역 보물을 찾고 싶은 도굴꾼의 심정으로 말이다!
이 끈질긴 애정이 담긴 과정을 통해 나는 총 6개의 의미 있는 공간과 모임에 닿을 수 있었다. 이제 안동과 나는 끈끈한 애정의 실타래가 엉킨 ‘의미 있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나의 글을 읽는 모두가 안동 지역에 닻을 내리고 싶다고 결심하길 바라며, 애정 어린 보물을 손에 쥘 수 있기를 바라며, 안동 지역에 대한 나의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어릴 적, 보물 상자에 아끼는 것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나씩 꺼내줬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과 같이 안동을 소개하는 지금, 나는 나만의 보물 주머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소중히 푸는 느낌이다. 내가 찾은 공간은 이번 프로젝트를 하며 알게 된 곳도 있지만, 대개 일 이년 안동을 왕래하며 서서히 하나씩 찾은 보물과도 같은 곳들이다. 그렇게 한 군데 두 군데 찾으며, 그리고 프로젝트를 통해 그곳 주인장들을 알아가며, 안동을 향한 나의 애정은 더 애틋하게 커져갔다. 마치 안동이라는 반짝거리는 보물 주머니를 손에 쥔 작은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안동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하게 된 컨셉이다.
이어 보물을 찾는 배경을 ‘땅속’이라고 설정하게 된 이유는 안동을 살리기 위한 곳곳의 생명력 있는 연대에서 떠올리게 되었다. 놀랍게도 안동 지역 문화가들과 연결되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모두가 도시 재생이란 꿈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낙후되어 가는 공간, 연령,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것을 하고 계셨다. 그분들의 귀한 마음과 정성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정하게 된 컨셉인데, 당장은 어두컴컴해 보이는 땅속일지라도 생명력을 간직한 새싹들이 땅 밖으로 돋아나기 위해 꿈틀거리는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프로젝트를 하며 느낀 것은 겉에선 보이지 않는, 들여다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참 많다는 거였다. 그저 공간만 방문했을 때는 몰랐던, 그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장께서 몸소 실현하고 계신 삶의 의미를 듣게 된 거처럼. 이렇듯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볼 때 비로소 나에게 닿는 것이 있었고, 이런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안동의 이야기가 전체의 1/10쯤은 될까? 아니 1/100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분이 군데군데 그들의 터를 닦으신 채 재미난 일상을 살고 계시는 듯했다. 적다 보니 한 영화(소울)의 오프닝이 떠오르는데, 토끼가 삽을 가지고 땅을 파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이다. 파면 팔수록 겉에선 볼 수 없었던 군데군데 자리한 아름다운 마을을 발견하게 되는데 끝에 완성된 지도 같았던 땅속 마을 이미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위 컨셉을 모두 합쳐서, ‘땅속 굴 마을, 그 보물 지도를 선물로 드립니다.’로 나의 지역 프로젝트의 전반을 꾸려보았다. 겉에선 보이지 않는 땅속의 보물과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머지않은 미래 아름답게 안동을 꽃피울 것을 기대하며!
본격적으로 숨겨진 안동의 보물들을 풀기 전에, 안동하면 내로라하는 유명 관광지들 중에 직접 가본 ‘병산서원’을 나의 감성과 시각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낙동강의 물길이 S자를 그리며 하회를 감싸 안아 흐르는데, 그 물길이 감싸는 중심에 있는 화산 자락의 끝에 병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병산서원에서 유생들은 유교 경전을 탐독하거나 서원에 배향한 선현을 기리는 제사를 양대 축으로 삼아 일상을 보냈다고 한다. 더불어 산과 물에 둘러싸인 배산임수 지대의 서원을 노닐며 세상과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전히 병산 서원 구석구석에는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했던 세계관이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방문해보면 알 테다. 뒷짐지고 자연을 거닐고 싶은 선비 된 심정을!
* 병산서원 방문 Tip_비포장 진입로
병산 서원의 진입로는 꽤나 길게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비포장 흙길로 되어있다. 꼬불꼬불 좁은 오르막을 흙먼지 풀풀 날리며 올라야 그 길 끝에 위치한 병산서원에 도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길을 오를 때, 요즘 세상에 유명 관광지의 진입로가 비포장도로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툴툴댔었다. 그러나 ‘일부러’ 이 길을 흙길로 남겨두었다는 지인분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금 그 의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진입로에서부터 예스러운 서원의 정취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자 했던 마음. 그리고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너무 편하게 서원을 들락날락하며 붐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 꾸불꾸불한 진입로 때문에서라도 이 서원이 고요하고 평온한 공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참 필요한 비포장 진입로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방문했던 서원은 옛 선비들이 간직하고 싶었던 그 공기와 정신을 잃지 않고 잘 간직한 채 머물러 있었다.
단 의미와 마음은 빼어나나, 여전히 길의 초입은 오르막길이고 길 가장자리가 까마득한 절벽임은 변함없으니, 만약 차로 운전해 간다면 운전에 각별히 신경 쓰시라는 안부를 전한다!
* 선비 된 심정으로 노닐고 오시길!
병산서원에서 제대로 ‘힐링하며 노닐 수 있는’ 나의 작은 방법을 전하고 싶다 :) 먼저는 여름에 가시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자연이 가장 푸르러 화창할 때, 그리고 병산 서원 곳곳에 지천인 배롱나무의 백일홍이 만개할 때! 옛 선비들은 껍질이 없는 배롱나무 줄기를 보며 가식 없이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는데, 우리야 편한 마음으로 붉고 화려하게 피는 백일홍을 맘껏 누릴 수 있으니, 그 특권을 잘 누리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단아하게 자리한 서원을 둘러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서원 주변에 펼쳐진 자연을 누리며 더 큰 쉼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서원 앞에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새하얀 고운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 백사장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느린 웃음이 절로 떠오른다. 백사장에서 강 쪽을 바라보면 사방이 커다랗고 높은 산이 우거져 있는데 무더운 여름, 높은 산으로부터 감미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흐르는 강은 그 열기를 식혀주는 최고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나는 같이 간 사람들과 백사장의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거나, 낙동강 물길에 물수제비를 던지기도 했는데, 이처럼 서원이 간직한 자연을 온전히 누리고 오길 추천한다.
병산 서원은 왔다 갔다 도장 찍는 식의 관광지가 결코 아니다. 느릿느릿하게 시간을 내어 호흡과 걸음을 늦추고 누려야 제맛인 곳이다. 그러니 부디, 조급한 마음보단 선비 된 심정으로 그저 자연과 서원에서 사뿐히 노닐고 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초원사진관은 지난해 안동에서 친구와 사진을 남기기 위해 방문했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안동 시내 한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한 한옥형의 초원 사진관은 공간에 들어섰을 때부터 주인장께서 이곳을 얼마나 촘촘한 애정으로 꾸몄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직접 공수해오신 자개 문짝의 거울, 다양한 형태의 빈티지 나무 의자, 탁자의 놓인 계절을 담은 과일까지! 주인장의 부드럽고 따듯한 감성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더불어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장께서 인위적인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자연광에 의지해 사진을 찍어주신다는 거였다. 사진관 한 켠에 크게 창을 내어, 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에 기대어 촬영을 진행해 주신 덕에 훨씬 따듯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나와 초원사진관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사진을 찍으러 방문한 것 그 목적이 전부였다. 굳이 인연의 껀덕지를 이어본다면, 우연히 두고 온 나의 자그마한 머리끈이 남아있었달까? (이 머리끈을 빌미로 다시 방문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게 전부였는데, 지역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더 깊고 넓게 초원사진관에 대해서 그리고 주인장께서 살아온 삶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겐 다른 사진관과는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닌 사진관이 되어버린, 초원사진관! 늘 언제나 애정하며 응원합니다.
* 지속 가능한 사회를 고민하는 사진작가가 꾸린 공간 ‘초원 사진관’
(지역 프로젝트의 과정 중 초원사진관의 주인장이신 ‘이재각’ 사진작가님과 했던 소통은, 안동 그리고 지역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달리하는데 가장 큰 한 걸음이 되어주었다. 나에게 와닿은 큰 폭의 한 걸음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닿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보내주신 원문을 최대한 편집 없이 담았다)
안녕하세요, 초원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각입니다. 안동이라는 지역을 관심 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고민스럽지만, 다소 두서없더라도 써내려가 보겠습니다.
저는 유년시절을 안동에서 보냈습니다. 나고 자란 고향이에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하지만 좀 오래 걸렸네요, 이곳을 떠나 타지 생활을 했답니다. 대학에서는 전공수업보다는 이러저러한 계기로 또 함께한 사람들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안동에서 자란 제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느껴졌죠. 제가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다양한 삶들이 존재했고, 많은 아픔들을 보아야 했고, 함께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대학 강의실보다는 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어 갔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혼자서는 못했을 것이고 함께한 사람들과 경험 덕분에 말이죠. 여전히 생각들은 여물지 못하고 계속 흐르고 있답니다. 타지 생활을 하다가 귀향을 할 마음을 먹게 된 즈음에 저의 관심사를 정리하면, ‘지속 가능한 사회’였던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우리 사회의 이면이 너무나 참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분단’문제와 ‘지방 소멸’문제를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거대한 문제이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영향력은 1도 없어도 꾸준히 무언가라도 친구들과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분단’문제에 관해서는 사진 작업으로 풀어가고자 하지만 많이 헤매고 있답니다. 분단된 사회가 가진 모순들, 저는 미군 기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하고자 해요. 모르는 분들이 많지만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기지로 인해 오래된 마을들이 갈라지고 사라지고도 있습니다. 저는 군산과 성주, 평택, 제주 강정 그리고 가끔씩 오키나와를 오가며 기지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로 일종의 문제 제기 혹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해서 책과 전시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데 음, 작업자로서 가지는 현실적 문제들, 불성실함 등으로 더디게 더디게 나가고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작업하겠다는 핑계 아닌 핑계인 샘이죠. 올해부터는 안동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작업들도 해야겠다는 마음만 먹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문제는 제가 귀향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기도 했습니다. 인구를 비롯해 사회적 인프라가 수도권,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지역별 격차도 커지고 급기야 ‘소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고향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대도시 생활의 현실적 어려움도 있었고 사진 작업이 돌아다니며 하는 경우가 많아 굳이 도시에서 있을 필요는 없었어요. 지역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도전을 보면서 기운을 얻기도 했고요. 고향으로 돌아와서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은 그러한 연유로 시작됐습니다. 제가 활동할 수 있는 거점이 필요했어요. 작업 공간, 이왕이면 경제적인 토대도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을요.
초원사진관은 사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점지?해주신 이름이에요.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그 담임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당시 선생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길 언젠가 사진관을 하게 되면 ‘초원사진관’이라 이름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사진관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저는 그저 네, 하고 말씀드렸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셨던 선생님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사진관을 열고 와보시고는 많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공간을 준비하고 오픈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간을 알아보면서 생각한 것은 제가 운영할 공간을 상업적인 공간만으로는 이용하지 말자였습니다. 제가 귀향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자는 나름의 목표를 세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간을 리모델링 할 때도 고심이 많았습니다. 혼자 운영하기에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작은 공간을 어떻게 바꿔야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결과적으로 이 또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락방을 없애고 화장실을 드러내고 마당을 다시 복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구상하는 시간은 지난한 과정이었어요.
사진은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사진을 매개로 이 공간에서 나와 우리 이웃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흐르고 확장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사진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누구나 오셔서 사진 책을 볼 수 있게 개방하는 것이에요. 아직 사진 책도 적고 찾으시는 분들도 적지만 사진 책 속에 담긴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사회적 이야기들도 읽히기를 기대하지요. 다만, 저의 기대일 뿐 사진 책을 보는 이마다 각자의 해석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영업은 처음 해보는지라 많이 서툴러요. 그래서 이것저것 안정이 된다면 외부 작가를 초청하여 ‘사진가와의 대화’를 열거나 사진가를 다룬 영화들을 상영할 계획입니다. 저 말고도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조금은 다른, 어쩌면 같은 세상의 단면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만남이 관심과 애정, 자기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상상합니다. 카페나 공방 등 여러 공간들이 생겨나는 이곳 원도심이 상업적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문화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 어떠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원사진관 외에도 복합문화공간 짙은이나 몇몇 공간들과 소통하고 교류하고 있어요.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함께 어떤 기획들을 실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상상합니다.
저희 공간의 이야기가 말씀 주신 내용에 얼만큼 화답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정성스레 보내주신 글에 저의 고민과 활동을 미약하나마 글로 정리해 봤어요.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괜한 이야기를 너무 늘어놓았나 싶기도 해요.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이곳 작은 공간에 관심 가져 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짙은’이 카페가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하게 된 데에는 주인장의 의미 있는 바람이 담겨 있다. 주인장과 소통했을 때, 주인장께서 전해주신 말을 함께 남긴다. “안동이 문화 관광의 도시이지만, 청년문화는 굉장히 취약한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부터 청년들의 문화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고, 다행히 제가 취미로 삼고 있는 사진, 음악, 영화를 조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공간은 카페가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영화모임, 사진모임을 하고 있으며, 코로나 이전에는 1/4분기마다 각각 계절 공연을 병행하였으며, 젊은 작가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대여해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짙은’은 방문했을 때마다 그 공간의 모습이 다양하게 변해있었다. 어떤 때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으로, 어떤 때는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또 어떤 때는 기타를 배우는 기타 교실로 말이다. 카페라는 하나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끝없이 모습을 변모하고자 애쓰는 ‘짙은’을 응원해 주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이내 그 공간에서 복작복작하게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적 교류에 함께 동참해보고 싶지 않은가?
* 내가 마주한 ‘짙은’은, 당신이 마주할 ‘짙은’은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애견 펜스를 열고 카페로 들어서야 한다. 이유는 큰 개 두 마리가 당신을 격하게까진 아니고 나긋하게 혹은 나른히 반길 것이기 때문이다. ‘짙은’은 복합문화공간인 동시에 ‘복합 동물 공간’으로 불려도 될 만큼, 공간을 채우고 있는 동물 친구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 두 마리가 고양이와 세 마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 그들은 가끔 넓게 난 카페 창가에 앞발을 올리고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는데, 그 모습이 참 사람 같아 슬쩍 웃음이 날 때도 있다.
그리고 ‘짙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개성이 강한 (한때는 머리를 기르셔서 더 임팩트가 컸는데, 최근에 짧게 자르셨다) 주인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인데, 아마 앞치마를 두른 채 꽤나 시크하게 맞아주실 것이다. 큰 인사말 없이 조용히 주문을 받으러 카운터로 들어가셔서 이내 무심하게 주문을 받으시고, 카페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시크 그 자체로 일관하신다. 그러다 갑자기 기타를 잡고 띠리링 연주를 하기도 하시니, 도대체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는 마성의 주인장이다.
내가 마주했던 ‘짙은’은 그 어떤 곳보다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한적한 동네 길가에 우두커니 자리한 건물, 거리가 어둑해지면 스탠드를 제외하고 카페 내에 모든 불을 끄시는데 어둠 속에서 두런두런 나누던 대화를 잊지 못한다. 낮에는 혼자 책을 들고 와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석 한 켠엔 마룻바닥 존이 있는데, 창가로 들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살랑이는 흰 커튼 아래에 고요히 넘겨지는 책장! 언젠가 꼭 실현해보리라고 다짐했다. 아! 그리고 루프탑에도 꼭 올라가 보시길 권한다. 달이 환한 밤, 고요한 옥상 의자에 기대어 밤하늘을 보면 유유히 빛나는 달빛 아래 오롯이 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여러분들도 ‘짙은’에 머물다 오시길 바라본다.
상식적이지 않은 공간 ‘짙은’, 상식을 따라 상업화를 추구하기보단 그저 군데군데 묻은 개성 따라 틀 없이, 제한 없이 ‘방치’된 공간 ‘짙은’. 내버려 둔 것 같은 공간에 이리도 속속들이 사람들이 모여듦은 아마 감춰진 주인장의 애정과 가꿈이 있어서겠지.
* 바람과 마음이 머무는 책방, 가일서가 방문기
가일서가는 안동 가일마을에 오목조목 위치한 고요한 마을 한 켠에 자리해있다. 버스에서 내려 수제 나무 표지판을 따라 이십 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걷기의 과정 또한 너무 행복할 테니 꼭 만끽하시길! 나는 한창 꽃기운이 가득한 봄에 방문했는데,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와 고요한 시골 그림에 나 홀로 있었다.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그렇게 굽이굽이 들어가 수려한 풍채에 한옥 책방 가일서가에 도착했다.
서가는 입구와 마주 보는 대청에 큰 창이 내어져 있고, ‘ㅁ’자 공간에 천장도 훤히 뚫려있어 거의 야외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인위적인 느낌보단 더 쉽게 자연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랄까? 시원하게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공간을 열심히 채우고 있었다. 대청마루에는 꽃잎처럼 흐트러진 책들이 바람에 따라 살랑이며 그들의 책장을 넘기고 있었는데, 나는 그 여유로움에 취해 오래오래 서가를 눈에 담았다.
도착하니 돌쇠(주인장)께서 차를 내주셨고 이내 가일서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주셨다. 어쩌다 안동 이곳에 책방을 차리게 되셨냐고 물었을 때, 별 건 없다며 이리 말씀해 주셨다. 도시에서 오래 직장 생활을 하며 사셨는데 문득 힘에 부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던 많은 날들 끝에, 딸아이에게 더 살기 좋은 곳이 어딜까? 고민하며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렇게 오래 이곳저곳을 탐색하다가 찾은 이 공간은 무려 250년이 된 노동 재사였는데, 주인 어르신께 10년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의미를 담아 가꾸기 시작하셨다.
가일서가는 찾는 많은 이들에게 책방 너머에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가령 위로와 위안에 공간이랄까? 비 오는 날이면 오셔서 물끄러미 창밖만 보다 가시는 손님, 밤에 울며 문을 두드려 차를 내어드린 손님, 고등어 장사를 하시다 들러 담소를 나누고 가시는 손님 등... 다양한 삶의 모양에 분들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쉼과 위로를 얻기 위해 가일서가의 문을 두드렸다.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곳이 진정한 ‘핫플(hot place)’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따스히 어루만져 주는 뜨거운 공간, 겉모습 따위에 평가를 내려두고 그 어디보다 환영받을 수 있는 공간, 그렇게 이곳 가일서가를 거쳐간 많은 이들은 위안과 안정을 얻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이 아담한 책방에서 한 달에 책이 무려 160~670권까지 팔린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건 이웃들과의 관계의 끈이었다. 망하지 말라며, 대형 서점이 아닌 굳이 가일서가로 주문을 넣어주시는 그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모여.. 이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괜스레 눈물이 나서 훌쩍이고 말았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에, 그 예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각박한 현실을 밝히 비추는 반딧불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 돌쇠께선 내년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여전히 ‘모험’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미 가일서가 이 공간은 우리에게 ‘모델’이자 ‘모범’이다. 그러기에 더 굳건히, 그 자리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오래오래 남기를 바라본다. 절뚝이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둥지로, 그리고 점점 무서워지는 세상에 보란 듯이 증명해내는 공간으로 그렇게 남기를 말이다.
별 건 아니지만 편지와 책방 이름을 새긴 책갈피를 드리고 왔는데 메시지가 오셨다. ‘편지 보고 가슴이 많이 따듯해졌습니다. 주신 나무 책갈피는 서가를 하는 한 보물 1호로 지정하고 사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안동에 방문하신다면, 이곳 가일서가는 꼭 방문해보시길, 돌쇠가 내어주는 차와 함께 담소도 기꺼이 나눠보시길, 대청의 기대앉아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낮잠에도 빠져보시길, 그리고 문턱을 나올 때는 응원 그리고 책 한 권과 함께 든든한 마음으로 나오시길! 꼭꼭 권해드린다 :)
이번에는 특정한 공간과 사람보다는, 그런 분들이 모여 하고 계신 모임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정말 끼리끼리라더니(좋은 의미로!) 안동 내에서 내가 연락드린 초원사진관 작가님과 짙은 주인장 두 분이 포함된 사진 모임이 활동하고 있었다. 모임의 이름은 ‘로컬그라피 오월(Localgraphy 오월)’이었는데, 5월에 주변의 몇몇 친구들을 모아 결성하게 되어 ‘오월’이라 지었고, 지역을 뜻하는 ‘로컬’과 사진을 뜻하는 ‘포토그라피’를 임의로 합성해 ’로컬그라피‘라고 지으셨다고 한다. 지역 청년들이 사진을 매개로 사라져가는 것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해 기록해보자는 취지로 결정하여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귀한 모임이었다.
* 중구동기록프로젝트 with Localgraphy 오월
로컬그라피 오월 모임을 결성하고 안동의 원도심인 중구동부터 지속적으로 기록해보기로 하던 차에, ‘도시재생주민공모사업’에 해마다 운 좋게 선정이 되어 ‘중구동기록프로젝트’라는 기획으로 3번의 작업을 진행할 수 있으셨다고 한다. 연락을 드려 모임과 작업물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니, 진행하셨던 프로젝트의 책자와 전시 준비 기록들을 보내주셨는데 하나하나 다 의미 있는 작업물이라 간략하게 소개해보고 싶다. (나의 말보단 직접 전해주신 글을 인용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전달력이 높을 거 같아 직접 인용한다)
2018년 중구동기록프로젝트 <그림같은 집을 짓고> “도시가 재생이 된다고 하는데 길이 넓어지고 가로등이 세워지고 건물이 바뀌고는 있으나, 정작 주민들이 주인공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오랫동안 살아오신 어른들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어른들의 생애사를 듣고 기록하고 남긴 작업이었지요.”
2019 중구동기록프로젝트 <지금, 여기, 우리> “이곳 안동을 방문하거나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작업했습니다. 길거리에 부스를 설치하고 거리를 오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고민 상담과 셀프 촬영을 진행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주인공,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2020 중구동기록프로젝트 <가족의 탄생> “3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희는 도시 재생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인프라가 확충되는 재생사업 또한 중요하지만 멀리 보았을 때, 세대 간, 남녀 간 등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된다면 도시가 재생되는, 지역의 활력이 되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구동에 거주하는 네 가족을 섭외하여 모임의 회원들이 팀을 짜고 몇 개월간 만나면서 ‘가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옛 가족앨범 사진들을 수집했어요. 저희 모임의 청년들과 동네 주민들이 가족 같은 사이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 응원, 동참, 연대로
중구동기록프로젝트 외에는 ‘localgraphyoweol’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회원분들 각자가 찍은 지역의 정겹고 따듯한 찰나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인스타그램을 보지만, 이분들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 뜻깊은 계정 하나를 알게 되어 좋다. 문득 일상에서 인스타그램의 스크롤을 내리다 안동 지역을 상기할 수 있어서, 그때마다 좋은 취지로 모인 로컬그라피 오월을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연락을 주신 운영진께선 로컬그라피 오월 모임이 지역에 감당하길 바라는 역할과 바람을 짤막하게나마 전해주셨는데, 지역의 건강한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사진 작업을 통해 지역에서 바라본 것에 대해 이웃에게 말해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찌 보면 티 안 나는 소소한 활동 같아 보일 수 있는데도,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뭔가를 하고 계시는 진심과 정성을 다시 한번 본다. 어쩌면 이분들 덕에 지구 한구석을 차지한 여기 안동은 사라지지 않고 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최선을 다해 응원하는 것, 동참하는 것, 그리고 일상에 자리에서 연대하는 것!
8. 솜아트x성좌원 <별자리 : 별이 남겨진 공간>
<별자리 : 별이 남겨진 공간>는 안동 내에 한센인분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공간을 주목하고 새로 가꾸어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취지가 있는 전시였다.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은 안동 성좌원에 (구) 성좌 교회인데, 한센병 환자분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편견으로 마을에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교회 건물을 재활용하여 전시 공간으로 꾸며 내었다! 무관심 속 도리어 편견만 존재하는 그 자리에 안동 지역 청년들이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모인 것이다.
* 전시 주최 측, 솜아트팀의 이야기
전시의 주최 측은 지역 청년작가들이 모인 솜아트팀인데, 공공미술, 벽화, 조형물, 연극 무대 등 그리는 것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업체라고 소개해 주셨다.
들려주신 이야기에 따르면, 솜아트팀 자체에게도 이 전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한다. 전시를 하게 된 계기는 이 공간을 알았던 선배가 진짜 좋은 공간이 있는데 오래돼서 힘들 건데 한 번 보고 생각해 보라고 성좌 교회를 소개해 주셨다고 한다.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는 이런저런 견적 후에 너무 힘들 거 같아서 못하겠다는 핑계를 생각하며 장소에 갔는데, 공간을 보자마자 “아 여기서는 전시를 무조건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추진하신 작업이라고 하셨다. 그 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전시는 보란 듯이 증명해내었다.
나 또한 전시 막바지에 감사히도 전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보통의 전시는 그 전시 작품에만 관심이 가지만, <별자리 : 별이 남겨진 공간>은 전시 이름에서도 나와있듯 공간이 더 눈에 들어왔던 전시였다. 실제로 전시를 기획할 때 취지도 작가 개개인이 주인공이 되는 전시보다는 공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다고 했다. 전시가 이뤄진 (구) 성좌 교회는 한센인분들에게 어려웠던 시절 희망이 되었던 공간이었는데, 이 공간 그대로를 잘 보여준다면 관객들 또한 한센인분들에 대해 거리감을 두지 않고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두고 작업하셨다고 한다.
이후 전시가 오픈되고 한센인 어르신들께서도 직접 전시를 보러 오셨는데, 솜아트팀에게 교회가 안 없어지게 잘 써줘서 감사하다고, 문화생활을 접해본 적 없는 어르신들께선 자신들의 이야기가 포함된 작품을 보며 눈물까지 보이셨다고 한다. 그런 광경을 마주하며 늦지 않게 뭔가를 하여 위로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위로를 해드린다지만 사실 솜아트팀이 더 많은 위로를 받은 전시였다는 소감을 전해주셨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관심이 없던 곳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행복하였습니다.” 전해주신 이야기를 읽는데 마음이 찡했다. 보지 못한 곳을 주목하여 아름다운 의미를 담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는 나의 마음도 찡한 마음에 담아 소소히 전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 참 낭만적인 지역 전시의 맛
교회 벽에 벗겨진 페인트칠, 남겨진 성좌 교회의 물품들, 일상의 자리를 빌린 탓에 불편한 전시 공간 구성 등. 빤지르르하게 닦아진 크나큰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도 좋지만, 지역의 역사와 흔적이 숨 쉬는 공간을 재창조한 지역 전시의 매력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머물러 있던 과거에 현재의 생생한 공기가 물밀고 들어와 격동 찬 문화의 장을 일궈냈다. 전시의 운영 또한 방치된 공간의 자유로움을 따라, 큰 규제 없이 오고 갈 수 있게 문‘만’ 활짝 열어두셨다. 그렇게 지난 세 달 동안 자유로이 많은 사람이 이 공간을 들락거렸다. 주최한 솜아트팀 또한 그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공간을 누리고 한센인들에 대한 편견을 깼으면 하는 ‘완연한 을의 입장’을 자처하셨기에,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나에게도 친히 물어오셨더랬다. ‘궁금한 거는 더 없냐고, 전시는 잘 보셨냐고’.
작은 지역, 작은 커뮤니티 속에서 이뤄진 소소한 전시이기에, 전시 기획자와 작가님과 직접적인 대화가 가능한 이것이 참 낭만적인 지역 전시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 있는 공간을 살리는 지역 문화 활동에 무한성! 안동은 (서울에 비해) 문화적인 인프라가 적고 건드려지지 않은 곳이 난무하기에, 그 어디라도 문화의 씨앗을 심어 잘 가꾼다면, 창의적으로 재창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무한히 가졌다.
지역 프로젝트를 조언해 주시며 천샘께서 입버릇처럼 해주셨던 얘기가 있다. 지역 문화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그래서 몇 개의 루트만 잘 뚫는다면 곧 깊고 넓게 같은 취지로 모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정말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에 닿으며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는데, 앞서 몇 분께서 소개해 주신 덕에 이미 해당 관계자분과 온라인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방문한 솜아트x성좌원 전시에서 정말 우연히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관계자분을 대면으로 마주친 것이 아닌가! 어떻게 그분인지 알아봤냐하면, 앞서 메일로 관계자분이 네트워크에서 진행했던 여러 프로젝트를 소개해 준 바가 있었는데, 마침 그 브로셔를 들고 전시 담당자분과 사진을 찍어달라고 나에게 친히 부탁을 해오셨다. 정말 이들의 관계망은 촘촘히 그리고 끈끈히 연결연결되어 있구나를 새삼스럽게 실감하며, 메일로 전해주신 내용을 짤막하게나마 전달해본다.
* 생동감 있는 안동의 모터 역할,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의 대표분이 메일의 답장을 보내오셨는데, 네트워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마음을 먼저 전해주셨다. 고향이 안동이셨는데, 대학과 직장 생활을 서울에서 하다가 문득 한국 사회를 바꾸는 공간으로 ‘지역’을 고민하게 되셨고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에서 대안적인 활동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안동으로 돌아오게 되셨다고 한다. 돌아온 뒤에는 비슷한 생각을 지닌 친구들과 선배들을 찾아다녔고 안동의 청년 자립 공동체인 바름협동조합 멤버들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지역 청년 자립 활동을 하게 되셨다. 이후 여러 재단과의 조율 끝에 2019년 5월 31일, ‘주어진 대로 살기보다 다르게 살고 싶은 우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안동청년공간네트워크를 시작했고 지역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공익활동을 하는 단체로 꾸려오고 계시다.
지역 안동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어떠하신지 물었을 때,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데 자기는 자주 이 구호에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고정 불변한 전통은 없고, 전통 또한 재해석되어야 살아있는 전통이 되는데, 이에 비해 안동은 지역 청년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지닌 청년들에게,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 늘 폐쇄적이었다고. 특히 보수적인 지역사회, 가부장적인 문화는 여성 청년들에게 더 무겁게 느껴지는 안동 지역이었다. 이런 안타깝고 이해되지 않는 지역의 현실을 마음에 담아,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는 안동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좀 더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시민들이 마음껏 본인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게 그 디딤돌의 역할을 착실히 감당 중이다!
이제껏 해오셨던 여러 활동들을 다양히 소개해 주셨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동네 언니’ 프로젝트이다. 그동안 마이크가 주어지지 않았던 동네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로, 누구보다 인생을 멋지게 살았던 수많은 동네 언니들이 있지만 정작 남들 앞에서 강연을 해보거나, 마이크를 잡고 떠들어본 경험을 적은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기 위한 취지를 가졌다. 안동 지역이 머물러 있는 미미한 단계의 성 평등 의제를 환기시키고, 더 나은 지역사회가 될 수 있게 한 걸음 이끌어준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다양한 매력에 동네 언니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여야 회담’도 함께 하셨다는데, 현장에 함께 하고 싶을 만큼 신선하고 통쾌한 기획이 아닌가 싶다!
안동 지역을 이 시대에, 이 사회에 발맞추어 생동감 있게 나아갈 수 있는 ‘모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참신한 기획으로 늘 안동 지역을 잘 보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다들 안동청년공감네트에게 인스타그램 등의 여러 루트로 응원을 전해주길!
10. 하트로 채워진 안동 보물 지도
당신의 하트가 그리고 나의 하트가 더욱 꽉꽉 이 보물 지도를 채울 수 있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