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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Sep 08. 2022

요즘의 나의 열정

 대기실 창 너머 조그만 섬 사이로 여명이 인다. 다섯 시 삼십 분. 계절이 가을로 달려감에도 불구하고 간밤에 두 사람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은 나이 팔십의 치매노인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주취자였다. 여덟 시간 넘게 익수자를 찾았지만 노인은 발견하지 못했고 주취자는 물 밖으로 건져냈다. 밤새 달려온 노인의 보호자들은 어머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고 주취자의 보호자는 창피한 듯 기본적인 조사를 끝내자 바로 그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밤새 두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했지만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까치는 인간세상은 관심 없다는 듯 울어댔다.


 나는 퇴근 준비를 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해 머릿속은 짙은 안개가 낀듯했고 눈은 충혈되었다. 비몽사몽 간이었지만 어제저녁 무렵 걸려온 두 녀석의 카랑한 목소리가 졸음을 쫓게 했다. "아빠 메타몽 빵 언제 와? 내일 오는 거지?" "응 내일 오지 당연히, 아빠가 퇴근하면서 사갈게."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나는 쿠팡 새벽 배송을 클릭했다. 천오백 원짜리 빵을 만원이라는 이해 안 가는 가격으로 사야 했지만 수많은 편의점을 돌기 위해 써야 하는 기름값이라 생각하며 카드번호를 눌렀다.


 샤워를 끝내고 노란 박스를 열었다. 박스 안에는 메타몽 빵이 아닌 다른 빵 3개가 들어 있었다. '포켓몬 빵 2세대 신상 3종'이라고 분명히 쓰여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이지 하고 핸드폰을 열었다. 작은 글씨로 '랜덤 발송'이라고 깨알같이 쓰여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두 녀석의 볼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보지 않으려면 4시까지 메타몽 빵을 구해야 했다.


 '포켓몬 빵 있어요?' '메타몽 빵 들어왔나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빵 때문에 동네 편의점 위치를 모두 파악해버린 나는 우선 가까운 곳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어요', '저녁에 들어와요', '이제 발주 안 들어가요' 뿐이었다. 방문한 편의점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발걸음은 무거워졌고 '빵 있어요?"라는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빵을 만든 회사가 미워졌고 '랜덤 발송'이라는 깨알 같은 글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메타몽 빵은 옆동네에도 없었고 다리 건너 마을까지 뒤졌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방문했던 편의점 개수 세는 걸 까먹고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나는 어느덧 공장단지 안까지 들어왔고 이런 곳은 빵보다 도시락과 맥주가 잘 팔리겠구나 하며 편의점 문을 열었다. 딸랑 거리는 종소리가 카운터에서 졸고 있는 할머니를 깨웠고 나는 빵을 사는 것보다 어떻게 두 녀석을 달래줄지를 걱정하며 삼각김밥 두 개와 생수 한통을 샀다.


 '할머니 여기는 포켓몬 빵 안 들어오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꺼내며 한숨 쉬듯 내뱉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애들이 몇 살인데?' 하며 다른 걸 물어오셨다. '아홉 살, 일곱 살이요'라고 대답하며 나는 지쳐있던 눈을 깨워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바코드를 찍으면서 할머니는 '잠시만' 하고는 카운터 뒤쪽의 창고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한 손에 검은색, 노란색 빵이 나란히 들려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중 하나가 메타몽 빵임을 확인하고 제자리에서 껑충 뛰었다. '예약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는데 오늘은 안 오네' 하시며 2개의 빵을 바코드에 무심히 찍으셨다. 할머니는 '요즘 이거 때문에 엄마 아빠들이 아주 피곤해' 하며 혀를 끌끌 차셨다.


 나는 빵과 삼각김밥을 두 손으로 곱게 받쳐 받았다. 물을 겨드랑이에 낀 채 할머니께 꾸벅 인사를 드리곤 차로 돌아왔다. 빵 두 개를 옆자리에 두고 인증샷을 찍어서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는 달덩이만 한 얼굴에 하트 두 개가 찍힌 이모티 콘 10개를 보내왔다. 시간을 보니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었다. 나는 악셀을 힘차게 밟았다. 빵 두 개 밑으로 들어간 삼각 김밥이 모서리를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고 졸음은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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