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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an 30. 2023

나는 바다로 출근합니다.

승진

 승진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먹던 밥숟가락을 식탁에 도로 내려놓았다. 잘 못 봤겠지 싶어 다시 휴대폰 화면을 켰다. 다시 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동기생 두 명의 이름만 눈에 들어왔다.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동료들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위로의 손길이었지만 가슴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억지로 밥을 떠 넣긴 했지만 모래를 씹는 듯했다. 입안이 꺼끌꺼끌거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새벽 출근하던 날들이 숙인 고개 앞으로 펼쳐졌다. 벚꽃이 피는지, 단풍이 지는지 모르는 세월을 보냈다. 결재를 기다리던 서류들이 이면지로 변해 책상에 쌓였다. 열일곱 장의 기획안이 계장의 빨간펜으로 온통 시뻘게졌다. 문서 한 자 한 자 고치던 계장은 짜증이 났던지 결재판을 던져버렸다. 나는 다시 그 결재판을 주워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승진 하나만 보고 참아온 세월이었다.


 그 세월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눈물은 어떻게 어떻게 참았지만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지는 못했다. 꽉문 어금니로 인해 턱이 욱신거렸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늘을 향해 한숨을 뱉었다. 승진 따위 뭐가 중요하냐 그냥 아이들 잘 키우면서 모자라지 않을 만큼 돈이나 벌자. 당장 내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스스로 달래 보았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핸드폰을 켜 연락처를 열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ㄱ,ㄴ,ㄷ 을 건너 ㅂ,ㅅ,ㅇ 까지 이르렀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힘 내’, ‘안타깝다.‘ 등의 문자가 왔지만 손가락을 휙 젖혀 화면에서 사라지게 했다. 다시 연락처를 끌어올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명단에 없어.’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뭐‘

‘미안해’

‘미안하긴, 우린 아무 상관없는 걸’


아내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나를 위로해 주었다. 승진됐어라고 남기면 누구보다 좋아할 사람이 안되었다는 말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내 말이 맞다. 변하는 건 없다. 내 마음만 요동칠 뿐이다.  


 이 요동의 세월을 3년을 보냈다. 결국 나는 심사로 되는 승진의 영예를 안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진급되는 근속승진을 눈앞에 두었다. 마지막 도전 연도에는 후배가 경쟁선 상에 나란히 섰다. 타인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게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화살이 따라다녔다.


 다음 계급에서 나는 또 요동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계급이 있는 직장에 몸 담고 있는 이상 그 파도를 피하기는 힘들다. 경쟁자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싸움의 본질은 자신과의 투쟁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봉급을 달라지게 하는 것도 승진이다. 무엇보다 늦은 입사로 구겨진 자존심을 다리미로 편 듯 펼 수 있는 게 승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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