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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Apr 10. 2024

새로운 시작, 3년차

나는 아직도 <생존기>라는 단어에 나를 포함시키고 싶다

3년차가 되었다. 유치원에 근무한 지는 2년차가 되었다. 작년 11월 말부터 연말-연초까지 많은 일들이 오갔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작년과 동일한 연령을 배정받아 안정적인 신학기를 보내고 있다. 유치원의 생태란 것이 참 묘해서, 아직도 경력으로 가장 막내인 것만 같은데도 이제는 다른 초임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나는 '기존교사'가 되었다. 사실 난 나 스스로는 완전히 적응했노라고 단언할 수 없는데, 초임이라/신입이라 주어지는 면죄부를 이제는 못 받게 된다는 생각에 또 다른 느낌으로 걱정을 안고 시작한 한 해였다.


 장단이 명확하다. 내가 그간 꿈꿔 온 '이미 유치원의 연간 프로그램 및 커리큘럼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알고 있는 연령별 발달에 대한 이해도와 시기적 특성을 기반으로 지도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신없던 신학기의 첫 달도 무사히 넘겼고, 4월 봄꽃인 벚꽃이 만개하는 시즌의 꽃말인 1학기 학부모 상담기간도 잘 마쳤다. 5월 가정의 달 전까지 조금의 여유가 생긴 현재, 나는 모르는 것들을 알기 위해 잔뜩 긴장하여 눈치 보고 애쓰기보다 그 외의 것들에도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된 오늘이 너무 값지고 감사하다.


만 1세를 경험하는 1년 넘는 시간 동안 연령에 대한 딜레마를 꾸준히 느꼈고, 작년 한 해동안 그에 대한 고민은 씻은 듯 해소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국면에서 눈치를 보고 과민하게 업무를 수행했던 내 모습은 어쩌면 남들 눈에 마찬가지로 한심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피부 질환이니 위장질환이니 얻어가며 보낸 격동의 적응 1년을 마치고 난 지금, 2년차 혹은 3년차의 눈으로 보니 또 다른 무언가가 보이는 게 늘 새롭다.


 일단은, 옆반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동안 나는 귀가 먹었는지, 옆반에서 동료 선생님이 훈육하는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고 옆반 아이들이 귀여운 줄도 몰랐다. 우리 반 아이들이 골고루 그저 이뻤고 다른 반 아기들에게 더 큰 애정을 줄 만한 일이 없었다. 또 각 동료 선생님들 간의 묘한 감정적인 흐름의 이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를 중심으로 흘렀던 눈치보기가 드디어 끝나고, 상황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된 것 같아 새로운 한 해이다.


 둘째로, 작년의 내가 무엇이 부족했고 어떠한 노력이 필요했는지도 느낀다. 새로운 초임선생님의 오늘날의 모습에서 작년 허둥대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고, 한편으로 답답하기도 하지만 결국 작년의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었지 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돕게 된다. 비록 아는 게 정말 몇 가지 없긴 하지만. 작년의 나는 오롯이 혼자 질문하고, 눈치 보며, 당일날 분위기를 파악하여 그날 그날 해야 할 일의 정확한 세부 사항을 이해해야 했는데- 나는 원래가 미리 준비한 대로 계획을 실천하는 게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터라 촉각을 다투는 하루 일과를 다른 반의 하루를 살짝 보고 흉내 내듯 따라 하게 되는 분위기가 못내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허둥지둥 대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버거웠던 작년과 달리, 성숙한 방법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적어도 작년 해왔던 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특정 순간에 특정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라는 어떠한 프로토콜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피곤하게 불안해하던 모습은 많이 줄었다. 이게 2년차, 3년차가 됨에 따라 변화하는 점일까?


 아쉬움도 있다. 아직 수업/일과 시간표가 바뀌는 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밀려들어오는 다양한 시간표 변동을 잘 기억하고 따르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메모를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한 증거이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 말고 이제는 메모를 정말. 습관화해서 더 원숙하고 평화롭게 하루 일과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메모하기, 안전사고 주의하기. 특히 작년과 같은 사고 올해는 만들지 않기. 사랑을 더 많이 주고, 아이들에게 눈맞춤하며 일 년 보내기.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잘해나갈 수 있게 나도 노력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이 브런치는 내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할 때 써왔던 일기장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그게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오늘의 내 기분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고 많은 저경력교사이기에 나를 [생존기]란 단어에 욱여넣고픈 마음이 가득하다. 혹자는 2-3년차까지는 생존기가 맞다고 하지만 1년이 지나면 그냥 저경력교사.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어 기분이 묘하다.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어찌 되든, 어쨌든 기분 좋은 올 해의 내 3년차가 더 알찬 배움과 성장으로 채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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