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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Feb 19. 2024

안정적인 직장

돈만 벌 수 있다면 안정적인가?

내 직장은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의 정점이다.

공립유아학교. 교육공무원. 교사.

감옥 갈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절대 잘리지 않는,

매달 작고 소중한 급여가 안전하게 통장에 꽂히는,

매우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직업


그런데 나에게는 안정적으로 아픈 직장이었다.

사고로 인한 아픔, 잔병치레, 감염병, 직업병, 낡은

조직문화 속 고통이 어우러져 안정적으로 불행했다.




안정적으로 고통을 선사하는 직장.

과연 급여만 제 때 받을 수 있다면 안정적 직장일까?

안정적이라는 건 그 상태로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변하지 않는다는 게 때로는 편안함을 주지만,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는데

그 와중에 변하지 않는 존재라면 불편하기도 하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안정적인 직장은 많은 이들의

꿈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나도 이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희생하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일하다 병들고, 병의 무게는 여전히 무거운

지금 나의 머릿속에 안정적이라는 말은 달갑지 않은

개념이 되었다.

너무 안정적인 나머지, 희망이 없었다.

너무 안정적인 나머지, 온갖 수모를 겪고도 아직도

이 직장 소속이다.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이곳은 안정적으로 변하지 않는 곳이다.

안정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 중에는

나의 고용도 포함되어 있다.

대신 이 직장에서 노력하고 진심과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변한다는 희망도 없었다.





공무원이기 이전에 가치를 전하는 직업인 교사는

변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낡은 가치를 전달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인데,

그걸 다 알면서도 현재를 가르치는데 그쳤다.

사명감으로 하는 직업인데 보람이 땅으로 솟구쳤다.



이왕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 대감집 노비가 낫지!

라는 생각으로 들어온 이 안정적인 직장에서

말이 씨가 되듯 대감집 ‘노비’가 되었다.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는 직장에 임용되었다는 건

이제 나에게 노비 문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노비가 되었으니 신분이 미천해졌고, 나의 행동에는

여러 제약이 따르기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급여가 들어오는 직장을 얻고,

교사로서 자유롭게 가르칠 권리를 잃었다.

아무도 날 자를 수 없는 안정적인 자리는

가르칠 권리를 보장하지만 앗아갈 수도 있었고,

나의 직장은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나는 어쩌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매일 안정적으로

예상되는 고난을 겪은 걸까.

나는 어쩌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교사의 삶보다

교체되면 그만인 노비의 삶을 살게 된 걸까

나는 어쩌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병을 얻었음에도

안정적으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과연 돈만 제때 꼬박꼬박 주면 안정적인 직장인가?

안정적인 직장에서 직업에 대한 사명감도 잃고,

건강도 잃고, 세상에 대한 무기력만 얻었다.


안정적인 직장,

누군가에게는 안정적으로 불행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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