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봄 May 29. 2024

가만히 쉬어라

이건 감기가 아니야

난 수업할 때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비단 유치원 수업만이 아니라, 준비한 것을 재밌고

효과적으로 전달했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

예를 들면 심리검사 해석상담이라던가,

대학원 발제는 준비는 힘들지만 내가 수업한다고

생각하며 진행하면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




꼭 유치원이 아니어도 된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실 근무 교육기간이 짧아 못해본

것들이 많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혹여 유치원을 떠나더라도, 수업과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다.


공직 밖 세상은 끊임없이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내가 유치원 경력을 살려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증명은 자격증이다.

그래서 정교사 1급 자격증이 간절하다.

설명할 필요 없이 유치원에서의 시간들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연수를 받고 싶으면 복직하라는 본청의 소극적인

태도에 신물이 났다.

세상의 그 어떤 자격증이 자격요건을 충족하는데,

본인들만의 지침으로 해석해서 자격연수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는 걸까.

법적으로 따지자면 허술한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닌

해명이었지만 꾹 참았다.


장학사님과 언쟁해 봤자, 그는 애초에 귀속행위와

재량행위의 차이도 인지하지 못하는 교직사회에

젖어든 사람일 뿐이다.

재량권이 있어도 없는 척, 상황이 다른데도 그저

하려던 대로 시키는 대로 하려는 교직의 관성은

내가 바꿀 수 없고, 이젠 바꿀 생각도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거지 뭐.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연수 직전에 복직했다 연수 끝나고 그만둬 버리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유치원과 동료들이 혼란스러우니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최후의 보루였다.


최후의 보루였는데 본청의 꽉 막히고 소극적인,

할 말이 많지만 말해봤자 통하지 않을 답변에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내 권리를 챙길까 싶다.


본청에서는 나에게 ‘차라리 쉬는 게 선생님께 좋지

않겠냐.‘ 섣부른 조언을 해 주셨다.

쉬는 것만으로 낫는 병은 의외로 감기와 염좌 외에

많지 않다는 걸 모르시나 보다.

나에게 쉬라는 건,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는 말로

들렸다.



마치 가만히 거기 있으라는 말을 들은
세월호의 희생자들처럼.

가만히 있다가는 우울증으로 죽거나, 교직 밖 경쟁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죽을 것 같은데.

또 가만히 쉬라고 한다.

아니, 괜한 짓 해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얌전히 있으라고 한다.



공직, 교직이라는 이 조직

정말 맞추려야 맞춰주고 싶지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갓생으로 억누르는 우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