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고향을 물으면 속초라 대답하지만, 실제 태어난 곳은 더 북쪽에 있는 아야진이란 곳입니다. 초등 4학년 때 속초로 이사했으니 두 곳에서 유년을 나누어 보낸 셈입니다. 단편적 기억은 오히려 아야진이 더 선명하네요. 그 기억의 대부분은 바다와 함께입니다. 햇볕 따뜻해지는 오월이 오면 바다가 놀이터가 됩니다. 이른 물놀이로 체온이 떨어지면 오월 햇살에 달궈진 백사장에 엎드려 차갑게 식은 몸을 데웁니다. 변온동물이 따로 없었지요. 그렇게 한여름 지나 다시 물이 차지는 구월이 되어야 물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여름이 지나려면 몇 차례 등껍질이 벗겨져야 했습니다. 그 바다가 ‘보이재’라고 불렀던 자연 그대로의 아야진 해수욕장입니다. 이듬해 햇볕이 다시 따뜻해질 때까지 아이들은 놀이터를 아야진항으로 옮깁니다. 방파제 낚시와 바위틈 게를 잡으며 여름이 아닌 계절을 보냅니다.
산은 더 많은 시간이 지나 대학 다닐 때입니다. 방학하고 속초에 가면 장맛비 끝나길 기다리다 끝내 못 견디고 빗속에 대청봉에 오릅니다. 명절 때 내려가면 가정 먼저 하는 일도 산에 드는 일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산과 바다는 언제나 갈증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활자가 있습니다. 군 복무 중, 사단 저격수로 뽑혀 일 년을 사격장에서 총만 쏘며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사격장에는 읽을 어떤 것도 없었고, 삭막한 일과에 아무 생각 없이 보낼 때입니다. 어느 날 사격장 위를 바람에 흩날리던 누렇게 바랜 신문조각 들고 혹여 한 글자라도 놓칠까 빠짐없이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활자도 중독의 대상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몇 해 전, 성취 없이 산 인생이 서글퍼 시인이라도 될까 시 다섯 편 꾸역꾸역 적어 모 일간지 신춘문예에 응모했었습니다. 당연히 당선작은 제가 낸 시와 무관했지요. 당선작을 읽으면서 시적 재능에도 한계를 느꼈지만, 무엇보다 극복할 수 없었던 건 그 정서, 8~90년대의 멜랑꼴리한 그 정서를 극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삶의 마지막 기대를 접고 일용할 주님만 추앙하며 살기로 작정했는데 노벨상이라니요. 이보다 더한 대리만족도 있을까요?
그녀의 작품은 고사하고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한 작가가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평이야 획일적일 수 없지요. 그래서 한강의 작품이 가소로울 수도 있습니다. 중국인이 더 나은 작품을 썼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건 역사인식입니다. 제주 4.3과 광주 5.18에 대한 그 무지막지한 역사인식은 정말 용납되지 않네요. 어쩌겠습니까?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 돼 버린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