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했다. 지난달 29일,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이 주관한 <수라 갯벌에 들다> 행사에 참관한 뒤 필자는 한동안 갯벌에서 한 발작도 움직일 수 없었다. 죽어가는 갯벌에서 뭇 생명들의 삶의 궤적을 뚜렷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만금 방조제는 지난 2010년 4월 완공됐다. 고군산군도의 섬과 김제시, 부안군을 이어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다. 총 33.9km로 네덜란드 자위더르 방조제의 32.5km보다 1.4km 더 길어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군산시 비응항, 야미도, 신시도, 가력도 등 바다 위에 떠 있던 3개의 섬을 연결, 여의도 면적의 140배인 409㎢의 바다를 육지로 만든 대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문제는 방조제 건설로 인해 사라질 위시에 있는 갯벌이다.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 위치한 군산공항 활주로에서 1.35Km가량 떨어진 수라 갯벌은 아직도 조석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다. 방조제 때문에 조수 간만의 차가 없어 갯벌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방조제로 막힌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수라 갯벌은 염생식물과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터전 역할을 하고 있다.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와 수달, 붉은 어깨 도요, 알락꼬리 마도요 등 42종 이상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철새 도래지이자 생명을 품은 태초의 갯벌이다.
경악할 일은 생명의 보고인 수라 갯벌에 국제공항이란 미명 하에 미군의 활주로를 하나 더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1996년부터 ‘전북권 신공항’이란 이름으로 추진된 ‘새만금 신공항’ 건설 사업은 지난 6월 30일 국토교통부가 공항 건설 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군산공항의 활주로는 1920년대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가미가제 특공대 양성을 목적으로 건설했다. 이후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고 국방부는 1990년 공항 동쪽의 하제마을 주민 630여 가구를 이주시켰다. 주목할 점은 새만금 방조제 착공시점인 1991년부터 20년 동안 약 1650만㎡ 면적의 매립지가 유보용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미군기지 확장용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다.
새만금 신공항이 국제공항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항 건설계획에 따르면 신규로 건설할 활주로의 길이가 2.5Km라는 사실이다. 해외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대형 항공기가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Km 길이의 활주로가 필요하다.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은 취항할 수 없다. 공항과 맞닿아 있는 남수라 마을의 11가구 주민들의 이주 대책도 없다. 더욱이 군산공항은 수요가 없어 매년 3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한다. 전국적으로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공항만도 10여 개에 이른다. 국토부의 2058년 기준 새만금 국제공항의 연간 여객기 수요 105만 명, 화물 수요 8000t 추정도 황당할 뿐이다.
현재도 미군이 관제 권한을 갖고 있지만 새만금 신공항이 건설되면 미군의 통제 하에 운영된다. 사실상 약 340만㎡ 면적의 국토가 미군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활주로 추가 건설을 두고 전쟁용 예비 활주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시대에 대중국 전진기지가 될 가능성마저 엿보이는 이유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지난 1일 일본 도쿄대가 주최한 '도쿄포럼 2022'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 팬데믹, 기후 변화 등 우리는 세계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대변하듯 온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노력이 한창이다. 국내 대기업도 RE 100 동참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새만금신공항 건설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새만금과 만경강 유역의 마지막 갯벌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반지구적 사업이자, 멸종을 가속화하는 생태 학살이다.
우리나라의 갯벌은 국토 면적의 약 2.8%에 달한다. 갯벌 속 규조류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탄소로 분리시킨다. 산소를 대기 중으로 보낸 뒤 남은 탄소는 자연스럽게 규조류의 몸과 유기물에 저장돼 생물체의 먹이가 되거나 갯벌에 저장돼 블루 카본(Blue Carbone)을 형성한다. 인류에게 무궁무진한 산소를 공급해 주는 생명의 보고인 것이다. 정부도 갯벌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재평가됨에 따라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갯벌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군다나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 갯벌에서는 지난 6월 25일 고려말~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상감청자국화문 잔’과 ‘녹청자’ 파편이 발견되어 과거 해상 교역 루트의 요충지로 밝혀진 곳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는 그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의 주인공 로버트 조던을 통해 ‘70시간 동안에 70년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는 시간의 무게를 대변했다. 수천 년 동안 자연이 이뤄낸 생명의 땅, 갯벌을 한 순간에 파괴하는 신공항 건설이야말로 가벼운 시간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을까’. 갯벌이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