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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Sep 09. 2020

[균형을 찾아서] 긴 장마가 남기고 간 것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그다음은? 

글 | 미지


요즘 우리 집은 배달 음식을 먹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사상 최장의 장마로 인해 쌀이며 채소며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 때문에 대형마트나 시장에 가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 먹는 것이나 배달시켜 먹는 것이나 똑같은 비용이 든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다.


어제 점심에는 순댓국을 시켰다.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플라스틱 용기가 6개나 나왔다. 절망감을 느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얼음 조각이 아닌 돌 위에서 사냥을 하는 하얀색 북극곰이 나왔다. 원래는 북극에 여름이 찾아오면 북극곰들은 바닷물이 언 해빙을 징검다리 삼아 이동하거나 그 위에서 사냥을 한다. 하지만 최근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북극의 빙하는 급격히 줄고 해빙은 보기 어려워졌다. 영상 속 북극곰은 능숙하다는 듯 다 녹은 바다 위 반쯤 올라온 바위 위에서 먹잇감을 찾는다. 북극곰들은 생존을 위해 기후변화에 적응해 가는 중이라는 내레이션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생명체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나 동물의 세계에서 무감각과 무신경은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니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 기후변화에 일조했다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다. 한 끼 식사에 플라스틱 쓰레기 6개. 놀라우면서도 언젠가 이 일이 당연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겠지. 그동안 북극곰들은 몇 대에 걸쳐 전수받은 사냥법을 고쳐갈 것이다. 머지않아 먹을 게 없어진 북극곰들은 인간을 사냥하는 법을 터득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멀지 않은 미래에 북극에 여름이 오면 조금 남아 있던 해빙까지 완전히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국제 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보'는 "2050년 이전에 북극에서 여름 해빙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라고 발표했다*. 과학 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서는 그로부터 50년 후인 2100년에는 북극곰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곰들이 다 굶어 죽는다는 것이다**.  


북극곰의 서식지가 사라져 가는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다. 사실 우리는 북극곰이 멸종되리라는 것을 초등학생 때부터 들어왔을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생 때 “다가올 미래에는 코카콜라의 북극곰이 빙하가 아닌 해변에서 선텐을 즐기는 이미지로 바뀔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멸종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미래가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당장 올해 54일 동안 이어진 긴 장마를 떠올려보자. 이번 장마의 원인은 “북극권의 이상 고온 현상”이라고 한다. 여름이 끝난 지금 강도가 ‘매우 강'인 태풍 3개가 연달아 한반도를 강타한 일은 또 어떤가. 기상청은 이례적인 가을 태풍의 원인을 “해수면 온도 상승을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았다. 더 이상 먼 미래라고 외면하기엔, 천재지변이라고 방관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는 중이다. 변화가 필요한 건 인간인데 말이다. 


백수 생활을 하는 동안 느낀 게 하나 있다면, 인간은 쓰레기를 참 많이 배출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세 식구가 사는 우리 집만 해도 사흘이면 선풍기 크기의 재활용 통이 가득 찬다. 먹고 자고 싸는 데 이토록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15년 전 초등학생 때 배운 기후변화의 신호가 노란 불이었다면 지금은 빨간불처럼 느껴진다. 기후위기란 말이 실감 나는 시대다. 


올해의 이상 기후는 변화가 아닌 경고다. 지금 우리에겐 어렸을 때 배운 표어 문구를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구는 빌려 쓰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a9mFNFP2-NI

BBC 제작진이 만든 8부작 다큐멘터리 '일곱 개의 대륙 하나의 지구'. 내가 본 건 6부 북아메리카. 내레이션은 사딸라 아저씨가 맡았다. (출처 유튜브) 



참고

*조선일보 | 여름 북극 해빙, 30년 안에 완전히 사라질 것

**경향신문 | "2100년에 북극곰이 사라진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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