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이야기
환자의 삶, 가장 가까이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고귀한 생명을 지키는 간호사
세브란스병원에는 간호사가 3,500명이 있고, 그중 남자 간호사는 200명 정도라고 한다. 내가 간호학과에 입학한 2008년에는 80명 정도의 동기 중에 남자 동기는 단 한 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남자 간호사가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Q. 간호사가 되기 전에 이 정도로 바쁜 줄 아셨어요?
"아뇨, 상상도 못 했고, 나이팅게일 선생님도 야근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을 거예요.ㅋㅋ 일주일에 두 번씩 파트장님 찾아가 울었어요. 환자들은 간호사의 연차와 상관없이 균일한 서비스를 기대하지만,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8년 차 손창현 간호사)
간호사가 바쁘고 힘든 직업이라는 건 당연히 알았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꼬인 군번과도 같았던 나의 수술실 간호사 시절은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수술실은 업무 특성상 몇 달에 한 번씩 진료과를 바꿔가며 트레이닝을 받는데 나는 첫 발령을 인력이 부족한 '신경외과'로 받게 되어 입사부터 퇴사할 때까지 NS(neurosurgery) 수술방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른 진료과, 특히 GS(general surgery)는 인력이 많을 뿐만 아니라 수술 프로시저나 기구가 비슷해서 어느 누가 와도 손을 바꿔(근무자를 교체한다는 은어) 주기가 수월하지만 신경외과는 사람의 생명에 가장 중요한 '뇌'를 다루기도 하고, 종양의 위치나 종류에 따라 수술방법이나 기구가 천차만별로 달라져서 교대 근무자가 오더라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뇌출혈 환자들은 밤이나 새벽에 많이 발생하는 슬픈 현실...
새벽 5시에 일어나 기숙사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데이 근무 시작.
Brain tumor 3개인 정규수술은 당연히 근무 시간 안에 끝나지 않고, (보통 머리를 열고 종양이 있는 부위까지 찾아가는 데만 2시간 정도 소요됨)
방장 선생님이 퇴근한 후에도 이브닝 근무자와 함께 남은 수술을 마무리하고,
이제 집에 좀 갈라치면 응급 환자가 들어왔는데 이브닝 근무자 중에 NS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이것 까지만 하고 가라는 미션을 수행하고 나면 어느덧 시간은 "아쉬워 벌써 열두 시~♪"
수술실은 오버타임 수당을 제대로 계산해 주는 부서이긴 하지만 16시간 동안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고 일할 바에야 일 안 하고 돈 안 벌고 말지 싶었다.
Q. 간호사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유세웅 간호사는 어릴 적 소아암을 겪고, 어린 나이에도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살려만 주신다면 저처럼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습니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삶이 지칠 때마다 아팠던 손을 바라보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환자, 보호자, 동료에게 전하자는 생각으로 산다고.
Q. 매일 환자를 마주하면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환자는?
나는 어땠을까. 어떤 계기로 간호사가 되었을까. 사실 그럴싸한 이유는 없다. 특별히 아파서 병원을 다닌 적도 없고, 가족 중에 의료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저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어둠의 심연을 헤매던 어린 시절.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렇게 간호사가 되었고, 간호학과 신입생이던 날로부터 15년이나 흘렀지만, 단 한 번도 내 전공을, 직업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선배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병원을 그만두던 순간에도 간호사라는 직업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간호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고,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간다.
그래서일까. 보건교사가 된 지 어느덧 5년 차가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나도 모르게 '간호사 12년 차'라는 말이 먼저 나오곤 한다. 솔직히 환자에게 내 손으로 주사 한 번 놔 본 적이 없고, 요즘 병원이 어떤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지만, 스스로 나 자신이 교사이기 이전에 '간호사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수술실을 그만둔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환자가 있다. 원발암에서부터 뇌로 전이된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늦은 오후에 수술실로 온 환자였다. 그때 나는 오전에 했던 수술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상태였고, 오늘도 칼퇴는커녕 저녁도 먹지 못하고 일할 생각에 발을 질질 끌며 영혼 없이 환자에게 다가갔다.
"의치, 안경, 속옷 다 빼고 오셨죠? 8시간 이상 금식하셨죠? 오늘 수술에 대해 설명 들으셨죠?"
AI가 인간의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면 그건 바로 나였을 거다. 신경외과 수술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완치를 꿈꾸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다른 곳에서 뇌로 전이된 환자의 머리를 연다는 것은 환자를 살린다기보다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한 임시방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의 눈물겨운 사연에 반응하기에는 내 뇌는 마취가 된 듯 무감각해졌고, 1분 1초라도 의자에 앉고 싶어 수술실 입구의 휴게실만 간절히 쳐다봤다. 영혼이라고는 1도 없는 앵무새 같은 목소리로 수술 전 환자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뒤를 돌던 그 순간. 어디선가 따뜻한 손이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쾅.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았다. 그것도 너무 세게. 너무 아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마스크 아래로 눈물 콧물이 줄줄.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고작 추가근무 몇 시간 한다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환자에게 위로를 받다니. 내가 이 일을 10년을 했나 20년을 했나. 고작 1년 남짓 일해놓고는 벌써부터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 너무 무섭고 괴로웠다.
이 환자는 유세웅 간호사의 손에 남은 흉터처럼 내 마음속의 흉터가 되어 매너리즘에 빠지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길잡이가 되어 준다.
Q. 나에게 간호란?
비록 나는 오래전 임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밤낮으로 환자를 지키고 있는 내 친구들이 있다. 3교대 근무가 너무 힘들다고, 야근 수당도 없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이들은 단 한 번도 환자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의료행위 하나하나마다 수가를 책정하여 돈을 받는 의사와는 다르게 환자에게 아무리 많은 것을 해 줘도 입원료나 의사 행위에 포함되어 제대로 된 비용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간호사의 업무다.
세상에 수많은 의학 드라마와 영화가 있고, 의사들의 24시간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자주 방송된다. 그러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은 찾아보기가 참 힘들다. 툭하면 파업으로 힘을 과시하는 집단과는 다르게 환자를 볼모로 그 어떤 집단 행위도 하지 않는다. 나이팅게일, 백의의 천사라는 프레임에 갇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강요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퀴즈에서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줘서 참 고마웠다. 사람들이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병원에서도 간호사라는 존재는 쉽게 잊히거나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도 간호사들은 언제나 그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고마움을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