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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Jun 28. 2024

보건강사님은 왜 수업을 안 하나요?

보건지원강사의 비밀

12시 10분. 4교시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린다. '이제 튼튼이가 오겠군!' 식사 전에 인슐린을 투약해야 하는 1형 당뇨 학생을 기다린다. 5분, 10분.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늘 정해진 시간에 오던 학생이 오지 않는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어 교실로 향했지만, 불이 꺼진 교실엔 아무도 없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아, 오늘부터 구기대회지. 예선전하러 체육관에 갔을 수도 있겠구나' 들뜬 아이들을 헤집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니 해맑게 웃고 있는 튼튼이가 보인다. "튼튼아, 경기를 뛰어야 하면 선생님께 미리 말했어야지! 혈당 측정은 했니? 수치는 얼마야? 경기 참여할 수 있겠니? 밥 좀 늦게 먹어도 괜찮아?" 쇼미더머니에 나가도 될 법한 속도로 랩을 쏟아냈다. 다음부터는 말없이 사라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아이를 보내주었다.     


우리 학교에는 중학생 때 1형 당뇨를 진단받아 하루에 4번 이상 인슐린을 투약해야 하는 학생이 있다. 혹시 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해 보건실 냉장고엔 여분의 인슐린과 간식, 글루카곤 주사제가 늘 들어 있다. 1형 당뇨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던 시절엔 화장실 변기에 앉아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을 투약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보건실에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 놓고 편안하게 투약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는 중이다. 고등학생이면 인슐린 용량을 스스로 계산하고 조절할 수 있지만 응급 상황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기에 보건교사는 늘 경계 태세다.      


1형 당뇨 학생만 해도 신경 쓸 일이 많은데 간이나 신장이식을 한 학생, 희귀·난치성질환을 복합적으로 앓고 있는 학생 등 학교엔 '요보호학생' 수십 명이 더 있다. 학교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건강상 보호가 필요한 요보호학생은 평균적으로 전교생의 5%에 달하며, 그 수와 중증도는 날로 더해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보건교사가 고3 수업을 주당 6시간씩 하면서 8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홀로 해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덜기 위해 교육청에서는 '보건지원강사' 인건비를 지원해 준다. '건강하고 안전한 학습 환경 조성'을 위해 학급 수, 학생 수, 보건 수업 시수, 당뇨 학생 재학 등을 고려하여 지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1,300개가 넘는 서울시의 초, 중, 고 중에서 강사를 지원받을 수 있는 학교는 300여 곳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절반 정도는 1년이 아닌 한 학기만 지원을 받게 된다.     


운 좋게 강사비를 지원받았다 해도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보건지원강사는 「학교보건법」 제15조의2제3항에 의거한 '보조인력'이며, 교육부령으로 정한 보조인력의 역할은 「학교보건법 시행규칙」 제11조에 따라 보건교사의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1. 학교보건법 제15조의2제1항에 따른 투약행위 등 응급처치
2. 각종 질병의 예방처치, 건강관찰 및 건강상담 협조 등의 보건활동

즉, 보조인력은 보건교사의 '지시를 받아' 활동을 '보조'하도록 하고 있어, 보건교사를 대체하여 단독으로 위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위법이다. 하지만 많은 학교에서 보건교사를 교과 지도(수업)에 투입하고 그 시간에 보조인력 혼자 보건실 업무를 보도록 하고 있다.     


『유·초·중등·특수학교 계약제 교원 운영 매뉴얼』에는 계약제 교원 제도 운영 목적으로 재량활동 등에 따라 가중되는 교사의 '수업 부담 경감'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보건지원강사를 둠으로써 보건교사의 수업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맘 놓고 수업시수를 늘리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강사의 본래 사전적 의미는 학교에서 위촉을 받아 강의하는 사람을 뜻한다. 계약제 교원 운영 매뉴얼에도 강사의 임용 사유는 ‘주어진 특정 시간 동안 교육(강의)만 하는 경우’로 되어 있다. 학교폭력 책임교사도 교육지원팀 소속 교사도 모두 강사를 지원받아 수업시수가 경감된다. 그러나 보건 교과를 선택하는 학교의 보건지원강사만 보건 '수업'을 하지 못하고 보건실 '운영'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건교사가 수업으로 인한 부재 시 보조인력이 응급 환자에 대한 처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이로 인한 책임은 보건지원강사가 아닌 보건교사가 오롯이 지게 된다. 수업 시간 동안 보건실을 떠나 있어 학생 관찰과 상태 변화에 따른 대응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얼마 전 중간고사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보건지원강사님과 함께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들이 강사님께 시험감독 언제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강사님이 본인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보건교사가 수업으로 자리를 비울 때 보건실을 지킨다고 답했다. 그러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사를 뽑았는데 강사가 아니라 보건교사가 수업을 한다는 사실에 다들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교실로 간 보건교사’와 ‘보건실 업무대체자가 된 보건지원강사’ 정확히 거꾸로 뒤바뀐 둘의 역할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 뒤바뀐 역할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교육부가 보건실 관리 및 응급의료체계 지원체계 구축을 통한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학교 문화 조성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말이다. 학생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은 대체근무자가 아니라 아프면 언제든 맘 놓고 찾아갈 수 있는 보건실의 보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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