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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라 Jan 09. 2023

내숭 떨면 반칙이지.

牛丼(규동・소고기덮밥)

 학생은 자고로 갓성비를 따져 끼니를 챙겨야 한다. 양도 적당하고 입에도 맞는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일본의 유학생에게는 편의점도 좋지만 고기가 듬뿍 담긴 牛丼(이하 규동)은 그야말로 최고. 엔화가 최고가를 웃돌던 그 시절에도 비싸야 5천 원 정도 했던 그 메뉴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선택하기 전, 나는 1년 동안 어학교를 다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며 나름대로 시간을 벌었던 시기였다. 즐거웠지만 마냥 즐기기만은 할 수 없었던 그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규동 가게가 있었다. 친한 동생과 함께 점심을 즐겼던 그곳. 이렇다 할 메뉴를 정할 게 없으면 우리는 특별한 약속 없이도 그 가게로 향했다. 항상 점심시간에 많은 학생들과 회사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었기에 항상 지갑을 들고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1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꽤나 많이 먹었던 규동이란 음식은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학생'을 위한 메뉴였다.




 어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게 된 내 주변에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친구들 뿐이었다. 어린 친구들이 동급생이 되니 나도 점점 그 분위기를 타게 되었다. 나이를 잊고 다시 프레시맨(fresh man)이 된 것이다.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 마음이 맞는 일본인 친구들이 생겼고 함께 밥도 먹을 정도의 친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배 고픈데 수업 마치고 뭐 같이 먹고 갈래?"

 

 우연히 나온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규동 어때?"


 그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 '아재음식은 별론데.'라는 짧고 충격적인 반응이 들려왔다.


 '? 아라니? 규동이? 그런 음식이었어? 정말? 진짜?'


 난 어쩔 줄 모르고 그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 표정을 읽었는지 제일 조심스러웠던 그 친구가 말을 건넸고, 대화는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


 "네가 아재라는 거 아니야~ 그냥 규동이 그래. 규동은 보통 아저씨들이 많이 먹으니까."

 "응, 맞아. 규동은 맛있지만 규동집은 어쩐지 가기 싫어..."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면, 그 규동집 앞에서 줄을 서 있던 건 어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근처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을 받고 나온 남성들이었다. 절대로 규동은 '학생들을 위한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학에 갓 들어온 새내기들, 그것도 아주 파릇파릇한 여학생들에게 규동을 먹으러 가자는 건 아마도 국밥집(국밥은 죄가 없지만)에 가자고 하는 것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왜 그날따라 난 규동을 찾았을까. 


 한 차례 에피소드를 마치고 우리는 지하철 역 근처 아케이드에 있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요기를 했다. 새로 나온 메뉴를 한 입 먹을 때마다 '어떡해!!! 맛있어!!!'(일본 특유의 높은 옥타브의 리액션모드)를 마구 날려주며 먹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이상하게 난 그들 사이에서 '규동녀(女)'가 된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양파를 채 썰고, 얇게 저며진 소고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물이나 육수에 간장 조금과 쯔유 조금, 그리고 단 맛을 내 줄 설탕을 적당히 섞어 양념도 만들어 둔다.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다가 은은한 향기가 올라올 때 준비한 양념을 부어준다. 팬에서 '촤아~'하며 소리 내는 양념을 잠시 끓이다가 준비한 소고기를 들러붙지 않게 한 장 한 장 넣어준다. 이렇게 양념에 고기를 끓이면 거품이 생기는데 이건 꼭 잘 걷어내야 나중에 잡내가 덜 난다. 정성껏 거품을 걷어내며 고기에 국물맛이 잘 배도록 落とし蓋(오토시부타・국물이 잘 배도록 눌러주는 뚜껑)로 덮어 잠시 둔다. 특유의 짭짤하면서 달큰한 향이 풍겨오면 완성. 복잡하지 않은 레시피로 만들기 참 만만한 음식이지 않은가.




 규동은 갓 지은 차진 쌀밥에 한 국자 쓱 퍼서 올려 먹는 게 제일 맛있다. 국물이 스며들고 고기와 양파도 적당히 올라간 덮밥. 간이 세지 않아 심심한 맛이 먹으면 자꾸자꾸 들어간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내숭은 못 떨겠다. 고기 냄새가 쿰쿰한 곳에서 아저씨들과 함께 먹으면 어떤가. 먹으면 맛있다는 건 사실인데. 


 '너희 정말 규동 별로였어?'


 이제 서른을 맞이하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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