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엄마와 아버지 두 분 다 떡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떡을 사 먹는 일도, 해 먹는 일도 거의 없었다.
자연 우리 자식들도 떡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릴 때는 엄마가 가끔 무지개떡을 해줬다.
쌀가루를 색깔별로 층층이 나눠 시루에 쪄낸 떡이다.
분홍, 노랑, 하늘, 하얀색의 무지개떡은 참 이뻤다.
우리는 부엌으로 향하는 방문을 열고 문지방 앞에 앉아
김이 오르는 솥단지를 바라보며 떡이 익어가길 기다렸다.
김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시루와 솥 사이에 쌀가루를 뭉쳐
발랐는데 떡이 익기 전에 그게 먼저 익었다.
엄마는 그걸 조금 떼어 줬는데 그것도 맛있었다.
4남매가 학교 다니던 그때는 모든 게 다 돈이 들어갔다.
먹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엄마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다.
집에서 떡을 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 추석인가, 엄마가 송편을 해 먹자고 했다.
무슨 생각에 엄마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음식 장만도 하지 않았다.
추석은 명절이라기보다는 공휴일에 가까웠다.
먹고사는 게 바쁘지만 떡 한번 해 먹지 못하는 명절이
문득 서글펐는지도 모른다.
나는 송편이 먹고 싶기는커녕 귀찮기만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송편을 왜 만들지, 불퉁거렸다.
휴일인데 마음껏 뒹굴면서 책만 보고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쌀가루를 반죽하고
송편에 들어갈 달달한 깨와 팥소를 준비했다.
동생들과 함께 다 같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엄마가 빚은 송편은 파는 것보다 정교하고 예뻤다.
심드렁한 내 손에서 나온 송편은 자꾸 터졌다.
손끝이 매운 큰 동생은 엄마처럼 잘 빚었다.
눈치 빠른 작은 동생은 금방 배워 잘 만들었다.
남동생이 만두처럼 크게 빚어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엄마가 송편을 쪄냈다.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모두 하나씩 맛보면서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안 먹었다.
그때는 정말 과자나 떡, 빵 같은 게 먹기 싫었다.
엄마는 성질머리가 못 돼서 안 먹는다고 혀를 찼다.
모처럼 명절 기분을 내려고 없는 살림에 떡을 했는데
맏이가 불퉁한 얼굴로 맛도 안 보니 서운했을 것이다.
그때는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악~~ 우야노!
추석날 새벽이었다. 엄마의 외마디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놀라서 나가보니 아무것도 없는데? 그게 문제였다.
전날 우리 가족이 만들었던 송편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정말 한 개도 없었다.
그 집 거실에는 빈 쟁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많던 송편을 누가 다 먹었을까?"
우리는 집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바람 통하라고 거실에 둔 걸 모두가 봤으니까.
그럼에도 송편이 몽땅 사라진 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엄마, 여기요."
주방 뒷베란다로 나간 남동생이 소리쳤다.
우르르 가보니 송편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작은 쥐구멍을.
오래된 아파트 베란다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서생원 가족이 밤새 송편을 물어 간 것이다.
가난한 가족의 송편을 몽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