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뼘 수필 Oct 12. 2024

찔레3

2024 김장생신인 문학상 수상작

  작년에는 할머니가 그랬는데. 자기 생일이라고.”

  놀란 그가 중이를 쳐다봤다. 아, 매워. 중이가 양념 묻은 입술을 벌리면서 하하거렸다. 

  “할머니가 말이냐? 너한테?”

  아이가 주억거리면서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그때마다 그의 가슴을 찌르는 말들이 퐁퐁 튀어나왔다.

  “할머니가 자꾸 날 잡았어요.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집이 싫다고?” 

  그가 신음처럼 내뱉었다.

  “오늘이 내 생일인데, 삼십오 년을 같이 산 할아버지는 그걸 모른단다. 자기 생일은 내가 얼마나 뻑적지근하게 챙겨주는데. 그러면서 나한테 화를 냈어요.”

  “할머니는 아무한테나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또 어떤 말이 나올까 두려웠고 그러면서도 다음 말이 궁금했다. 중이가 웃었다.

  “화 잘 냈거든요. 뭉치는 할머닐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맨날 아이고, 저놈의 개 좀 저쪽으로 치워라, 그러면서요. 그날도 할머니가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걸 보고 우리 뭉치가 좋다고 달려갔거든요. 근데 웬일로 뭉치를 보고 웃었어요. 그게 이상해서 기억하는 거거든요. 니가 우리 식구보다 낫다, 그러면서 뭉치에게 간식도 줬어요.”

  기억의 방식은 저마다 다른 걸까. 분명 아내는 작년 생일에 큰며느리랑 아들들 선물을 펼쳐 보이면서 좋아했는데. 그래서 한마디 하질 않았던가. 

  “그렇게 좋아? 다 늙어 생일 챙겨주는 게?” 

  “그럼 안 좋아? 그리고 늙긴, 이제 겨우 예순둘인데.”

  “내년에는 내가 거하게 챙겨줄게.”

  분명 그랬는데. 겨우 예순두 해를 살고 죽은 아내의 생일날, 그는 이름도 모르는 아이와 미역국을 먹고 있다. 들깻가루와 소고기 대신 바지락을 넣어 맑게 끓인 미역국은 시원하고 맛있었다. 두 번이나 더 달라고 해서 먹었다. 

  식당을 나온 그는 찔레 사료를 아이 손에 건넸다. 

  “나중에 주세요. 그거 넣을 데도 없어요.” 

  그래라. 그는 차에 올랐고 빈손의 아이는 마주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무슨 학원이 있나 싶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선생티를 못 버리고.     

  그는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주유구 뚜껑을 닫을 때 따다닥 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무릎이 움찔거렸다. 염증이 끓어오르는 무릎은 나을 기미가 없다. 염증 나는 더위가 그의 목덜미에서 쉰내를 풍겼다. 식당에서 셈을 치를 때, 반찬을 해놨으니 가져가라는 장모의 메시지가 왔다. 장모는 뒤늦게 문자 보내는 법을 배운 후 걸핏하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초ㅣ서방바븐굼지말게산가람은사라야짓.    

 

  뜬금없는 문자를 처음 받은 날, 그는 어리둥절했다. 해독하고 난 뒤에는 그냥 화가 났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겠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새롭게 익힌 장모의 낱자들이 꼴 보기 싫었다. 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에도 없는 답을 보냈다.

  네, 장모님도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문자도 다 하시고 대단하십니다. 

  이후로도 장모에게선 이러저러한 말들이 날아왔다. 점점 진화된 글자들이 제 자리를 잡아갔다. 나중에는 그게 편했다. 전화해서 육성으로 이것저것 챙기고 묻고 대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씻어줬다. 별거 아닌 문명의 이기가 새삼 편리했다. 

  여든여덟의 장모는 미각을 거의 상실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보름쯤 지났을 때, 처남 손을 잡고 그의 집을 찾은 장모는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는 맛도 모르고 담은 김치와 나물 몇 가지를 놓고 돌아갔다. 장모는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음식을 해놨다고 문자를 보내왔지만, 그는 용기 뚜껑을 열면 풍기는 플라스틱 냄새가 떠올라 메슥거렸고 먹지 않을 음식을 잘 먹었노라고 보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당신 딸 생일이라고 불렀구나, 그는 기꺼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길목 오솔한 곳에 차를 세웠다. 처가 마당에 대면 되지만 장모는 차가 후진할 때마다 행여 꽃밭을 건드릴까 봐 목을 늘어뜨리곤 했다. 차라리 편하게 대고 몇 발짝 걷는 편이 나았다. 한낮은 지났어도 쏟아지는 빛살은 기세 좋게 사방천지를 땀으로 흩뿌렸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 환하고, 뜨겁고, 허허로웠다. 그는 길섶 두둑에 소복한 찔레 덤불 앞을 지났다. 꽃을 이운 찔레 덤불이 생생한 초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언젠가 같이 걷던 이 길에서 갑자기 아내가 아, 찔레꽃 향기라고 말했을 때, 그는 새삼스럽게 아내를 쳐다본 적이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였지만 밥이나 반찬이나 빨래 대신 꽃향기라고 말하던 달뜬 목소리가 그는 낯설었다.

  “연두색 새순도 이쁘고, 하얀 꽃도 수수한 게 참 좋아. 가을에는 꽃자리에 빨간 열매가 달리는 것도 이쁘고. 그중에 제일 좋은 건 꽃향기야.”

  상기된 얼굴로 꽃에 대해 말하던 아내가 아내 같지 않아서 물끄러미 아내를 쳐다봤었지. 

  송곳 햇볕이 꾸지람처럼 따갑다. 꽃도 없는 찔레 덤불이 오늘따라 진저리 처지게 푸름인 게 아파서 그는 모질게 덤불을 낚아챘다. 가슴에도, 손바닥에도 칼금이 그어졌다. 

  그는 무심히 지나쳤던 찔레꽃을 떠올렸다. 수수한 얼굴로 화려한 장미의 대목이 돼주는 꽃, 온갖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났다가 질 때, 봄의 끝자락을 잡고 피는 꽃, 햇살만 있으면 산이고 밭이고 아무 데나 긴 줄기를 헤프게 내미는 꽃, 작은 새와 짐승이 깃들게 열매도 주고 품도 내주는 꽃.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해서 몰랐다. 알려고 한 적도 없다. 아내가 가진 향기로 그가, 자식들이 꽃 피었다는 걸. 그는 손등으로 눈두덩을 눌렀다. 가슴이 막혀 쿨룩거렸다. 화사한 장미에 넋을 잃어도 찔레를 찾아 두리번거린 적이 있던가? 무심코 돌아보면 게으르게 부는 봄바람에 무심하게 흔들리던 아내를, 그는 옆에 있어도 담지 않았다.      

  “왔는가? 오늘은 시간이 좀 났던 모양이지?”

  처남은 없고 장모만 있다. 그가 마트에 들러 산 소고기와 과일을 냉장고에 넣는 동안 장모는 기울어진 어깨를 하고 냉커피를 타서 식탁에 올렸다.

  “어디 편찮은 데는 없습니까?”

  “난 괜찮아. 자네 얼굴이 많이 상했네. 하긴 그리 여물게 받들어 주던 아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네.”

  장모가 울먹거렸다. 딸의 생일이라고 부른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전들 언제 그리 살뜰하게 챙겨줬다고. 

작가의 이전글 찔레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