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좋은 날
오늘은 유독 날이 좋았다. 가을이라는 이름의 여름에서 드디어 가을로 계절이 넘어왔다. 햇빛은 아름답게 반짝이고, 날씨는 선선하고, 하늘은 여름과는 다른 느낌의 푸른색을 자랑한다. 하늘이 깊고 멀다. 스포이드로 색을 뽑아낸다면 분명 어여쁜 색상이 보이겠지.
날이 좋아서 그런가 사람들의 얼굴이 유독 밝아 보인다. 나도 그랬다. 기분이 좋았다. 빛을 받은 풀과 나무는 고아해 보이고,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나는 최근에 잘 산다. 잘 살고 있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잘 사는 시간축에 있는 것만 같다.
내일이 기대가 되는 적은 별로 없었다.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없다. 나는 늘 다가올 내일과 멈추지 않는 시계를 저주했다. 나만이 세상에서, 그 시간에서 낙오된 사람이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도 돌아가고, 시간은 멈추질 않는다. 그랬다.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극도록 혐오했다. 죽고 싶었다. 지우개로 나의 존재를 지우고 싶기도, 가위로 도려내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내가 내일을 기다리고, 계획하며, 기대한다니. 과거의 나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다. 내 삶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대가 된다. 심장이 뛰고, 그 박동을 즐긴다. 가보지 않던 길을 산책하고, 나가서 커피를 사오고... 소소한 도전이 너무나 행복했다.
정확하게는 그 소소한 용기의 결과가 달았다. 달고 달아서 인상이 깊은 맛. 최근에 어디서 나온 지 모를 용기 또는 자신감은 간혹 분위기에 취해서 움직였다. 나는 은근 기분파였다. 그 짧은 즐거움에 취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부린 욕심은 이유를 모르겠으나 성과가 제법 좋았다.
옛 친구에게 보낸 연락에는 답변이 왔고, 센터에서는 나에게 기회를 제공했으며, 취미를 삼아 쓴 글에는 댓글이 달렸다. 그게 너무 좋았다. 나는 오늘을 잊을 수 있을까? 이렇게 달고 애틋하고 행복하고 보드라운 날을?
이런 나날이 분명 영원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오늘이. 이 행복과 행운의 순간이 힘든 나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기를.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이여 멈추어라! 넌 참 아름답구나!"를 내뱉고 싶은 날이다. 어쩌면 악마에게 홀린 걸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는 오늘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 말을 평야에 풀어놓으니 질주하고 싶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이렇게 살아갈 거야!
절대 지금에 안주하지 않는다. 내 만족은 비싸고 높다. 나는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아직 너무나 많다. 그러니까, 내일을 기다린다. 달을 보고 내일을 저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떠오르는 해를 보면 이제 설레는 마음도 든다. 내일을 산다. 살아갈 예정이다.
"" = 괴테의 파우스트 대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