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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서 Aug 12. 2022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난 아직도 당신이 괜찮아요. 그러니까 더 가요, 더 가봐요."

- 극 중 염미정(김지원)


"나의 봄은" - 캘리그라피



 <나의 해방일지>는 현대 직장인 혹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 인생을 마치 칼로 자른 롤케이크의 단면을 보는 것처럼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직장인의 한숨과 고된 일상의 토로는 내가 아직 직장인이 아닌데도 상당한 몰입감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박해영 작가는 평범한 일상,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려내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워딩, 어휘, 문장을 구사하는 데에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추앙이나 해방, 환대같은 키워드뿐만 아니라, 대화의 소재나 방향 등은 사실 우리의 일상 대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하지만 평범한 인생 속에서 조금은 특이한 대사들을 보면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고 느끼고, 메시지 전달도 명확하게 된 것 같다.


 MBTI 관점에서, I들에게 E가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도 눈에 띄었다. 드라마 초반부, 미정의 회사에서는 동호회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불러서 가입을 강요하고, 마치 사회 부적응자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소심하거나 각자의 사연과 이유가 있을 뿐, 어딘가 잘못된 사람은 아니었다. 조용한 사람도 있고,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일의 능률에 더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많다고 해서 절대로 그게 '올바른' 건 아니라는 것이다. 


 추앙을 거쳐 드라마는 '환대'를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첫 회에서부터 줄곧 미정의 주요 스트레스 요소이자, 인류애와 인정(人情)을 박살나게 만든 '찬혁 선배'를 만나고도 미정은 더 이상 그에게 화를 내거나 독촉하지 않았고, 그의 인생을 망치고 복수하려는 마음도 가지지 않는다. 그게 결코 완전한 용서는 아닐 것이다. 드라마는 그런 성인, 군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다만 미정은 '환대'했다. 치한으로 몰릴 뻔한 찬혁 선배의 상황에서 말 한마디로 그를 도와주었다. 그가 경찰에 끌려가고 싸움이 난다면 더 좋을 상황인데도 말이다. 

 구씨도 추앙을 넘어 환대하기로 했다. 백화점 직원을 찾아가서 깽판을 치고 위협했던 것과, 도박에 미쳤던 동료 형을 위해 자신이 모은 돈을 모두 챙겨나간 것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전화 메시지로 '환대'할테니 살아서 보자는 말도 남겼다.  

 

 미정은 날아갈 것 같으면 날려보내주고, 바닥을 기더라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구씨의 과거와 직업을 알고도 그에게 어떠한 훈수나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응원하고, 사랑하고, 추앙했다.


  드라마는 상당히 의도적으로 클리셰와 나의 예상(이 다음에는 이렇게 되겠지-)을 박살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위기와 슬픔이 찾아온다. 하지만 좋은 날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 무게에서, 지겨운 인간들에게서 해방되고 싶다. 

 이런 우리들에게 작가와 드라마는 해방의 방법으로 추앙하고, 응원하고, 환대하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할 것을 제시한다. 무조건 싸우고 쟁취하고 성공하라고 하지 않는다. 위로와 조언도 하지 않는다. 온전히 '내면'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대사와 메시지들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면서 <미움 받을 용기>를 읽었을 때가 떠올랐다. 내용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결국 나의 내면적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공헌'이 필수라고 말한 부분이 떠올랐다. 이것이 어쩌면 <나의 해방일지>에서의 '환대'와 일치하지 않나 싶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지치고 힘들어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 추앙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시 타인에게 환대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목을 조이는 것들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길이 아닐까. 


드라마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괜찮으니까, 더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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